생선회를 지금처럼 먹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어촌에서 나고 자라신 아버지는 술 드신 다음날 오징어물회로 해장을 하곤 하셨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것 말고 생선회를 드시는 것을 보지 못했고 나도 먹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과음하신 다음날 아침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장에서 생물 오징어를 사오시곤 했다. 오징어 손질이며 초장을 만드는 것까지 모두 아버지가 손수 하셨다. 어머니가 안 계실 때 식사 한 번 챙겨 드신 일이 없으시면서. 아버지는 오징어를 국수처럼 채를 치고 초장으로 만든 육수에 말아 드시곤 했다. 덕분에 나도 일찍부터 물회에 맛을 들였다.
눈치 빠르면 절간에서도 새우젓 꽁댕이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불굴의 한국인들은 사막 한복판에서도 생선회를 떠서 먹고 한 수 더 떠서 물회도 만들어 먹는다. 언젠가 리야드 이웃집에서 물회 먹으러 오라고 해서 반신반의하면서 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지만 물회 비슷한 모양을 갖춘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지난봄에 조카 따라 속초에 갔다가 맛본 청초수 물회는 지금까지도 눈에 삼삼하다.
굳이 바닷가에 가지 않아도 그만한 집을 못 찾을 건 아니지만 값이 만만치 않으니 쉬 엄두를 낼 일은 아니다. 며칠 전 방송에서 공평동에 싼 값에 푸짐하게 차려내는 물회집을 소개했다. 마침 아내와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그곳을 찾았다. 방송에 나온 집 치고 제대로 음식을 내는 집을 별로 보지도 못했고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이니 뭐 얼마나 잘하랴 싶었다.
잘하더라. 정말. 가보시라. 종로타워(옛 화신 백화점 자리) 뒤편 ‘육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