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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11. 2022

사우디 왕가 이야기 (8)

2017.11.08

새 왕정이 들어서고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휘발유 값이 한 번에 67%나 올랐습니다.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은 누진제 적용만으로 최대 10배 가까이 인상이 되었습니다. 국민 건강을 이유로 탄산음료에 50%, 담배에 100% 세금이 붙었습니다. 올해부터 개발하지 않고 놀리는 땅에 대해 공한지세 2%를 거둔다고 하지요. 이는 지주에 해당하는 것이니 일반 국민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공한지세가 2%라면 엄청난 수준인데 과연 지주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이 큰 세금을 내겠습니까? 어떤 형태로든 자기 부담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 들지 않을까요? 예컨대 자기가 생산하는 제품가격이나 제공하는 서비스요금을 올린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설마 했던 부가가치세가 계획대로 내년부터 5% 적용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년에 물가가 상당히 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왕정이라고는 해도 국민들 눈치를 전혀 외면할 수는 없었는지 올 초에 인상할 계획이었던 휘발유 값이나 구체적인 인상안까지 마련되어 있던 전기요금은 아직 동결된 상태로 있습니다. 대신 만만해 보이는 외국인 거주자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습니다. 부양가족세는 가히 살인적입니다. 부양가족이라고 해야 아내 하나 뿐인 제 경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부양가족이 많은 저소득근로자는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을 정도입니다. 함께 일하는 요르단 직원은 아내와 자녀 둘, 이렇게 부양가족이 세 명인데 이번에 이까마 갱신하는데 6천 리얄(1,600달러)을 부양가족세로 내야한답니다. 거의 한 달치 급여에 가까운 큰 금액입니다. 내년에는 이 금액의 두 배, 후년에는 네 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지요. 전기요금 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형편이기는 한데 국민 반발은 신경이 쓰이니 일단 전기요금을 인상하되 자국민에게는 차액만큼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모양입니다. 결국 만만한 외국인 근로자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것이지요.


얼마 전, 업무 때문에 2016년 사우디 인구통계를 확인한 일이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3,174만인데 그 중 외국인이 1,167만으로, 이 중 취업인구는 자국민이 502만, 외국인이 735만입니다. 더구나 자국민 취업인구 중에는 허수도 적지 않을 것이니 숫자로만 보면 사우디 경제의 주체는 자국민이 아니라 외국인인 셈입니다. 이처럼 경제주체로 자리 잡고 있는 외국인을 쥐어짜야 할 만큼 사우디 재정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새로 들어선 왕정에서 일부러 이런 정책을 펴기야 했겠습니까. 공교롭게도 새 왕정이 들어서고 나서 저유가가 본격화되었으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烏飛梨落)입니다. 새 왕정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일을 하자니 돈은 있어야 하겠고, 나올 곳은 점점 형편이 어려워지니 이렇게라도 할 수 밖에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우디는 올해 적자재정을 편성했습니다. 내년이라고 다를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외환보유고로 버틸 수 있는 한도가 앞으로 불과 몇 년 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네옴 신도시며 원자력발전소는 무슨 돈으로 짓겠습니까? (원자력발전소 2기 건설비를 200억 달러로 예상하고 있는데, 전체 계획은 무려 17기나 됩니다.)


네옴 신도시 개발 재원조달계획은 아직 발표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MbS가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Vision 2030 달성에 소요되는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도 아직 불분명해 보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사업참여국가에서 재원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으로 결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조건이라면 우리나라를 제외한 경쟁국에서는 응할 것도 같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유지하고 있는 탈핵기조를 고려한다면 재원조달까지 책임지는 조건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겁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사우디에서 요즘 추진하는 가장 흔한 사업형태가 PPP(Public-Private Partnership)입니다. 정부에서는 땅이나 인허가, 행정명령 등을 지원하고 민간에서 투자와 운영을 담당하는 형태이지요. 일종의 민영화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군요. 투자와 운영은 민간에서 담당하지만 사용료는 사용자, 즉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저 빚으로 꾸려가는 셈입니다. 저희도 환경과 관련해서 몇 가지 PPP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희 뿐 아니라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 대부분이 이런 형태이지요. 이럴 경우, 민간 투자자로서는 이익을 내야 하니 빚에, 이자에, 운영수익이 모두 국민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부담을 국민들이 과연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희가 추진하는 사업모델도 성사되겠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결국 새 왕정의 성공은, 다시 말해 MbS의 성공은 이러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은 해야 하겠고, 돈은 없고, 빚으로 꾸려가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부자들에게 돈을 내놓으라면 순순히 내어 놓을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재원조달에 대한 조급증이 이번 친위쿠데타의 원인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적 제거도 물론 큰 이유가 되겠습니다만, 정적 제거가 목적이라면 굳이 그들을 리츠칼튼 호텔에 수용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외신에서도 재산헌납 요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더군요.


친위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며칠 사이에 유가가 꽤 뛰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배럴당 55달러 선이던 두바이유가 불과 3~4일 만에 62달러까지 올랐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친위쿠데타를 계기로 사우디가 원유 감산을 유지할 것이고, 기대하지 않았던 러시아의 감산 참여로 상당기간 동안 이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네요. 사우디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이란과 긴장이 점점 도를 높여가고 있는데, 정말 잘 마무리되기 바랍니다. 이란과 충돌하게 되면 전쟁비용이 예멘보다도 더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모든 것이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될 테니 말입니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이젠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단계인데, 기왕 곤욕을 치른 왕자들이나 부자들이 흔쾌한 마음으로 곳간을 좀 열고, 유가도 60달러 선을 잘 유지해서 MbS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들이 잘 성사되기를 기대합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형편이 나아지면 외국인 쥐어짜는 것도 좀 덜하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 지위향상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되기를 기대합니다. 여성 권익신장도 중요하지만 이로써 그저 잠재력으로 남아있던 여성인력이 경제인구로 편입될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우디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객관적인 수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사우디 남성보다 여성이 생산성이 더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쪼록 사우디 왕정이 난국을 지혜롭게 잘 풀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우디 경기가 살아나고, 우리 교민이나 우리 기업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해서 사우디 성장에 기여하고, 그 결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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