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살펴보기 (7)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이 이 논란의 중심에 ‘동성애’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소수자 차별’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면서 이것이 단지 ‘동성애’ 만의 문제가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본 법안에서 말하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라고는 성전환 수술을 해서 화제가 되었던 트랜스젠더 연예인, 스스로 게이라고 밝혔던 연예인, 동성애자가 등장해서 소란스러웠던 드라마, 그 정도였다. 이 문제를 연구하는 고려대 김승섭 교수의 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들이 얼마나 큰 차별을 받고 있는지, 그래서 이들을 ‘성소수자’라고 부르는지 알게 되었다.
‘진평연’에서는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포함된 것[34]과 성별을 ‘남성, 여성, 그리고 분류할 수 없는 성’으로 정의한 것[35]을 문제 삼고 있다. 우선 이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겠다.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은 성적으로 지향하는(끌리는)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이성에게 끌리면 ‘이성애’, 동성에게 끌리면 ‘동성애’, 이성과 동성에게 모두 끌리면 ‘양성애’, 이성이나 동성 중 누구에게도 끌리지 않으면 무성애로 나눈다. (‘무성애’를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성별정체성(gender identity)’은 자신이 느끼는 성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자신이 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자신이 느끼는 성이 같으면 ‘시스젠더(cis-gender)’, 다르면 ‘트랜스젠더(trans -gender)’,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 ‘제3의 성(gender-queer)’으로 나눈다. <차별금지법> 제2조 제1호에서 “성별이란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이 앞서 말한 ‘제3의 성(gender-queer)’이다.
그동안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을 트랜스젠더라고 하는 줄 알았다. 사실은 자신이 타고난 성과 자신이 느끼는 성이 다른 사람을 ‘트랜스젠더’라 하며, 이들은 모두 성전환수술을 꿈꾸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정작 수술을 한 사람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은 모두 트랜스젠더이지만, 트랜스젠더라고 모두 성전환수술을 받은 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성애자’이고 ‘시스젠더’이다. 이 밖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들을 통틀어 ‘성소수자’라고 부른다. 이 문장에서도 나타나듯,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포함되지 않았다”거나 “밖에 있다”고 표현한다. 즉, 그들은 단지 다를 뿐인데 이미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차별금지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동성애로 대표되는) 성적지향’이 아니라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인데도 ‘진평연’으로 대표되는 반동성애 측에서는 이를 일관되게 ‘동성애’로 언급하고 있다. 하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당연하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 이유를 찾는 이들에게 이런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평연’의 주장은 ‘동성애=사회악’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는 동성애가 극한의 쾌락을 얻으려는 성적 타락의 결과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성애와 관련된 의학적 논쟁은 “그것이 사람의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타고난 것인가,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 선택한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진평연’에서는 동성애를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선천성’ 논란을 제외하면 의학적 관점에서는 다음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첫째, 동성애는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다.
둘째, 동성애는 수명을 단축한다.
‘진평연’을 비롯한 여러 반동성애 단체의 주장을 살펴봤지만, 의학적인 관점에서 이 두 가지 말고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소수자를 연구하는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는 “에이즈는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명적인 죽음의 질병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36] 1981년에 첫 에이즈 환자가 보고된 이래 지난 30년간 연구와 치료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왔고, 특히 1995년을 기점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이제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감염 이후 평균 32-50년을 더 살아간다. 비록 완치는 힘들다 해도 당뇨나 고혈압처럼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변화했다. 이제는 ‘형벌과도 같은 죽음의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승섭 교수에 따르면 동성끼리 성관계를 갖는다고 해서 에이즈에 감염되는 게 아니다. 에이즈는 ‘안전하지 않은(unprotected) 성관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감염된 상대와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갖는 경우 똑같이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 따라서 피해야 하는 건 동성애가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이다. 남성 동성애자의 에이즈 감염률이 높은 건 사실이고, 이런 이유로 ‘진평연’에서는 ‘동성애’가 에이즈 감염 확산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이 맞는다면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의 에이즈 감염률이 오히려 낮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진평연’에서 배포하는 자료에서는 이런 주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동성애는 수명을 단축하는가?
2015년 <침례신문>에 “동성 성관계는 동성애자의 평균 수명을 24년이나 줄이는데, 이는 흡연이 흡연자의 수명을 1~7년 줄이는 것에 비교할 때 매우 큰 수치”라는 기고가 실려 논란이 된 일이 있다. 반동성애 운동가들도 이 기사의 근거가 된 논문을 바탕으로 같은 주장을 펼쳐왔다. 이 주장에 대해 한겨레신문에서 가짜뉴스라고 지목하고 나서자 반동성애 운동가들이 한겨레신문을 반박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 주장의 근거가 된 논문은 미국 네브래스카대학교 캐머런 박사가 2007년 3월 미국 동부심리학회(Easter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서 발표한 것이다. 북미에서 반동성애를 외치며 이성애 중심 가족제도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여러 사이트가 그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그러나 연구 과정에서 사용한 조사 방법이 진실하지 않아 보인다는 이의가 제기되었다.
짐 버로웨이라는 학자는 미국 동부심리학회에 “캐머런 박사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표본을 조작했고, 여기서 얻은 결과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동부심리학회 회장인 필 하인라인 박사가 “카메론 박사가 사전에 학회에 제출한 내용과 현장에서 발표한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는 취지로 답변을 보냈다. 그 이후 캐머런 박사는 연구윤리 위반 혐의로 미국심리학회에 이어 미국사회학회[37], 캐나다심리학회[38], 네브래스카심리학회[39]에서 제명되었다.
현재 ‘진평연’ 배포 자료나 반동성애 측에서 발표하는 자료에도 이 주장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동성애가 인체의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의학적으로 검토할 것이 없다. 그러나 ‘진평연’에서는 동성애가 성적 타락의 결과이므로 전환치료를 통해 이를 이성애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는 의학계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다.
[34] <차별금지법> 제3조 제1항 제1호
[35] <차별금지법> 제2조 제1호
[36] 2016.03.31 뉴스앤조이 인터뷰
[37] 미국사회학회 결정문 https://digital.library.unt.edu/ark:/67531/metadc786184/
[38] 캐나다 심리학회 결정문 https://cpa.ca/aboutcpa/policystatements/#cameron
[39] 네브라스카심리학회 결정문 https://psychology.ucdavis.edu/rainbow/html/facts_camer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