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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30. 2020

[차별금지 8] 동성애는 후천적인가?

차별금지법 살펴보기 (8)

동성애는 비윤리적인가?


일반인들은 동성애가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그렇다면 이성애는 모두 윤리적인가? 동성애인가 이성애인가 하는 것과 윤리적인가 비윤리적인가 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마치 흑인은 비윤리적인가 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이성애는 윤리적으로 허용된 관계에서만 윤리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륜이나 성범죄 기사가 보도되지만, 모두가 이성 사이에 일어난 것이지 동성 사이에 일어났다는 기사는 본 기억이 없다. 없기야 하겠나만.


이곳 교민 한 분이 동성애자인 사우디 남자를 만난 일이 있다고 했다. 성도착에 가까운 호색한인데, 동성애에 맛을 들이면 다시는 여성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극한의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그러더란다. 아마 동성애자가 모두 이런 ‘성적타락’의 부류인 것으로 생각하고 많은 이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도 그런 경우가 소수 나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치 비윤리적인 이성애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동성애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성적타락으로서의 동성성행위’와 ‘성적지향으로서의 동성애’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물론 성적타락으로서의 동성성행위은 비윤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해도 괜찮은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반동성애 측에서는 동성애는 쾌락을 얻기 위한 성적타락의 결과이므로 전환치료를 통해 이를 이성애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많은 의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도 차고 넘친다. 인터넷에서 잠깐만 검색해도 양쪽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진다.


일반인으로서 관련 학술 자료를 읽는 것도 쉽지 않고, 각 자료에서 주장하는 학설이 타당한지 판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학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수많은 논쟁이 뒤따르고, 그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나서도 이를 뒤엎는 학설이 나오고, 그래서 정설이 바뀌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학문의 과정인데, 그걸 어떻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겠나.


의학적으로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판단하는 것은 동성애가 윤리적인지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동성애 측에서는 “동성애는 성적타락의 결과이므로 전환치료를 통해 이성애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느 학설이 맞는지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임상에서 전환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확인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유효한 국제기구 및 각 임상 관련학회의 표준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동성애는 질병인가?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는 1973년 국제 정신과 진단표준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5,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서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에는 동성애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40]


“동성애라는 것이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전환치료의 대상이 아니며, 전환치료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았고, 전환치료를 시도할 경우 오히려 자존감을 훼손하는 등의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안전하게 동성애를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신뢰할만한 증거도 없다.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동성애를 바꿀 필요가 없다. 동성애로 인한 차별이나 사회적ㆍ종교적ㆍ가정적 낙인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


세계보건기구는 국제질병분류(ICD-10,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41] 에서 ‘성적 지향 자체는 질병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


세계정신의학회(World Psychiatric Association)는 2016년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성명서를 발표했다.[42]


“동성애는 타고난 것으로, 생물학적ㆍ심리적ㆍ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영속시킨 불행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 의학이 동성애를 더 이상 질병으로 여기지 않은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 세계보건기구는 동성애를 인간 정상적인 성적 형태로 인정한다. 주요 국제 진단ㆍ분류 시스템(ICD-10, DSM-5)에서 동성애를 질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타고난 성적지향이 바뀔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고, 전환치료는 편견과 차별을 조장할 뿐 아니라 건강에 유해하다. 장애가 아닌 것을 치료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동성애는 전환치료가 가능한가?


2009년 8월,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는 ‘성적지향에 대한 전환치료’ 관련 문헌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결과 전환치료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으며 오히려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보고서를 발간했다.[43]


“동성애는 성에 대한 인간의 정상적인 감정으로서, 정신장애나 발달장애가 아니다. 전환치료로 동성애를 줄이거나 이성애를 높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안ㆍ우울증ㆍ자살충동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전환치료가 아동청소년에게 효과적이라거나 성인이 된 후 동성애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없고, 오히려 스스로 낙인찍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전환치료는 확인된 과학적 사실을 거스르는 것으로, 진료지침을 위반하는 것이다.”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성소수자 의료 수요’에 관한 보고서 2018년 판에 교정치료(reparative therapy)나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에 반대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44]


동성애는 선천적이며 전환치료 불가능


앞서 언급한 의학 관련 국가기구나 국제기구에서 동성애에 대해 견지하고 있는 의학적 입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이며, 장애나 질병이 아니라 정상적인 성적 상태이다.


○ 타고난 동성애가 바뀔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고,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신뢰할만한 증거도 없으며, 오히려 불안ㆍ우울증ㆍ자살충동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장애도 아니고 질병도 아닌 것을 치료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진료지침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제 의학기구가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최근 영국 정부는 “전환치료는 잘못됐으며, 우리는 그 활동을 계속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전환치료의 권유, 제공 등을 금지하는 모든 입법 및 비입법 선택지를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45]


결론적으로 임상에서 직접 적용되는 기준과 신뢰할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할 때, 동성애는 선천적이며, 따라서 전환치료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에이즈 확산의 주범도 아니고 수명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란 낯설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천적인 것이며 전환치료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윤리적이니 아니니 따지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일 뿐 아니라, 이를 이유로 차별을 가한다는 건 더욱 부당한 일이다.


<각주>


[40] 미국정신의학회 ‘동성애 관련 성명서(Position Statement on Issues Related to Homosexuality)’, 2013.12


[41] WHO ICD-10 F66 Psychological/behavioral disorders associated with sexual development and orientation; “Sexual orientation by itself is not to be regarded as a disorder.”


[42] 세계정신의학회 ‘성별정체성 및 동성애 관련 성명서(Position Statement on Gender Identity and Same-Sex Orientation, Attraction and Behaviors)’, 2016.10


[43] 미국심리학회 ‘성적지향에 대한 올바른 치료(Appropriate Therapeutic Responses to Sexual Orientation)’, Executive Summary, 2009.08


[44] AMA ‘Health Care Needs of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nd Queer Populations’ H-160.991, Year last modified: 2018


[45] 뉴시스 2018.07.03 https://newsis.com/view/?id=NISX20180703_0000353622



[표 5] 미국의학회 ‘동성애 관련 성명서’

[표 6] 세계정신의학회 ‘성별정체성 및 동성애 관련 성명서’


[표 7] 미국심리학회 ‘성적지향에 대한 올바른 치료’





[표 8] 미국의사협회 ‘성소수자 의료수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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