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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07.21 (목)

by 박인식

나는 소설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은 그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제가 뒤섞이거나 화자가 불분명하거나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 앞뒤를 오가야 하는 소설은 읽기 버거워한다. 내가 오랫동안 소설을 읽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이상 문학상’이었다. 사회 초년병으로 현장에서 현장으로 전전하는 가운데에서도 수상작을 빼놓지 않고 읽고 그 소설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 읽어가며 독서의 폭을 넓혔다.


1977년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시작된 ‘이상 문학상’은 이후 이청준, 박완서, 최인호, 서영은, 최일남, 이문열, 한승원으로 이어져 한국 문학사를 대표하는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은 사십 중반에 별이 된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이었다. 그 이후로 그만큼 흡인력이 있는 소설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8년 김채원의 <겨울의 환>부터 수상작의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작가가 뭘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알아차리는 건 고사하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소설 앞뒤를 오가야 했다. 그 후로 십 여 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읽었고 그것으로 더 이상 소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한동안 독서방송을 즐겨 들었다. 읽어볼만한 소설이라고 추천해서 읽었지만 소설과 거리가 멀어지게 만든 여느 작품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그런 감상을 정리해 올렸다. 그를 본 진행자가 내 성향에 맞는 작품일 거라며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을 권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던 <어두운 기억의 저편>을 떠올릴 만한 작품이었다.


안정된 가정에서 양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입양아가 한국에서 버려진 기억을 찾아가는, 어쩌면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주인공과 양부모, 과거의 인물과 한국에서 만난 주변인을 따라가며 그들의 상황과 감정을 그리고 있다. 오늘 독서 모임에서 만난 젊은이들과 그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내 생각을 밝히게 되었다.


“자식은 자기 인생만 자기 인생인줄 알지만 부모는 자식의 인생까지 포함해 자기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책임감 때문이라고 해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살아있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자식의 선택에 대해 부모가 동의하지 않거나 반대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생각하는 게 자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보니 지혜는 나이에 비례하고 그래서 삶의 문제에 대해 부모가 대체로 옳지만, 매번 옳을 수는 없더라.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반대하거든 사랑을 의심할 것이 아니라 왜 반대하는 게 잘못된 것인지 이해시키는 데 집중하는 게 현명한 길이다. 부모는 워낙 자식을 이길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지극 정성으로 이해를 구하면 부모가 허락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설령 자식의 판단이 잘못되었고 그 길로 가면 고생할 게 눈에 뻔히 보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부모가 반대할 게 뻔히 보이는 일을 하려 한다면 다른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자기선택이 옳은지 점검하는 데 온 힘을 쏟으라. 훗날 그때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부모 원망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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