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7.14 (목)

by 박인식

고영범 작가의 연극 <서교동에서 죽다>가 진수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걸 보면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소설로 읽은 지 불과 몇 달 되지 않는데 진수의 죽음은 전혀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기는 했지만 고통스러운 과거를 돌이키기 싫어한 무의식이 그 장면을 기억에서 지운 게 아닐까 하는 억지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오늘 다시 소설을 펼쳤다. 진수는 병약했지만 살아있었고 병약한 것도 연탄가스 중독과는 무관했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소설과 연극의 결론을 다르게 매듭지었다고 했다.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겪지 않고서는 그렇게 쓰기 어렵겠다고 생각한데다가 나이 대도 비슷해서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다시 읽다보니 주인공 진영과 저자가 동갑이었다. 하지만 이어서 읽은 후기에서 저자는 자전적인 소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었다. 소설보다 화목했고 유복했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것이 꼭 자신이 겪은 일이어야만 할까? 같은 세월을 보내며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고 그 느낌에 공감해서 쓰는 것이라면 자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평가가 저자에게 짐스러울 수는 있겠다 싶다.


한 겨울에도 우리 봄 날씨 같은 곳에 살면서 무척 그리웠던 것 중 하나가 눈이었다. 그것도 소리 없이 내리는 밤눈. 서울에 돌아와서 창밖으로 내리는 밤눈을 보며 송창식의 <밤눈> 들을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지난 1월 어느 날 그 소원을 풀었다. 저자는 소설 말미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같은 노래를 들으며 방송국이 있는 안국동에도 눈이 내리는 모양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안국동이라면 동양방송 운현궁 스튜디오에서 하던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아니었을까? <밤눈>은 내게만 유난한 곡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야밤에 글을 쓰다 보니 감성이 흘러넘친다. 내일 아침에 읽으면 지우고 싶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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