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살펴보기 (11)
사사기 19장에는 레위 사람이 집을 나간 첩을 찾아 돌아오는 도중 여부스에서 묵을 때 동성강간 하겠다는 성읍의 불량배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사건이 실려 있다. 성경의 동성애 관련 본문이 대부분 동성애 금지 명령과 이를 어겼을 때 가해지는 징벌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해 이 사건은 그런 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동성강간 하겠다고 레위 사람을 내달라는 불량배들에게 집주인이 ‘망령된 일’이라며 대신 레위 사람의 첩을 내주는 장면이 나타난다.
성경이 동성애를 금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망령된 일’은 동성애를 뜻하는 것이며, 이를 ‘망령된 일’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금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김근주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망령된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네발라’이고, 집주인은 성읍의 불량배들이 동성강간을 하겠다고 레위 사람을 요구할 때 두 번이나 ‘네발라’라고 말하며(19:23-24), 이와 함께 레위 사람의 첩을 성폭행하고 죽게 만들었을 때 또한 ‘네발라’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20:6, 20:10).”고 말한다. 이 사실 하나로 이 본문에서 말하는 ‘망령된 일’이 레위 사람을 겨냥한 동성강간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레위 사람의 첩을 겨냥한 ‘성폭행’도 함께 뜻하는 것이며, 따라서 소돔의 불량배들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폭력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이 본문은 동성애와는 무관한 나그네를 짓밟고 나그네의 여인을 성폭행해 죽게 만든 사건으로,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지워지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레위기 18장과 20장은 성경이 금하는 ‘가증한 일’이 열거하고 있다. 그 중에 동성성행위를 포함한 문란한 성행위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는 성경이 금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문란한 성행위 뿐 아니라 자녀를 몰렉에게 주지 말 것(18:21, 20:4)도 함께 명령하고 있다.
김근주 교수는 “문란한 성행위와 몰렉 숭배가 함께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두 행위의 공통점인 욕망에 대한 끝없는 추구를 지적하는 것이므로, 이를 현재 일어나는 동성애 논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늘날 성소수자들은 욕망을 참지 못해 누구라도 범하고 관계하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아닌 주어진 정체성 때문에 동성을 지향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로마서가 기록되던 당시의 히브리 문화나 그리스 문화 모두 가부장적이었다. 남성들은 여성들에 대해 지배적이었고, 바울은 당시의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당시 문화에서는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주어진 장소와 역할이 있으며, 이는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바울은 “남자 머리가 길면 부끄러움이요 여자 머리가 길면 영광”이라고 말한다. (고전11:14-15)
이런 문화에서 역할을 바꾸면 ‘불결’한 일이고 ‘유대 정결법을 위반’한 일이다. 따라서 성관계에서 수동적인 여성의 역할을 남성이 맡는 것은 불결한 일이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남성의 지배적인 위치, 그리고 성적인 문제에서 여성이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는 것인데, 지금의 가치관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성차별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잭 로저스는 그의 저서[55]에서 로마서 1:26-27을 ‘여성이 맡을 수동적인 역할을 남성이 맡은 부끄러움’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결국 이는 동성애와 무관한 구절이라는 것이다. 잭 로저스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이 로마서 1장을 해석하는데 다음과 같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서술한다.
“1) 이 본문이 우상숭배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못보고 있고, 2)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바울의 핵심을 간과하고 있으며, 3) 문화적인 배경을 놓치고 있을 뿐 아니라, 4) 이 본문을 우상 숭배자들에게 적용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려는 신실한 신앙인 동성애자에게 적용하고 있다.”
이 본문을 질문했을 때 진규선 목사[56]께서 매우 자세한 답신을 보내주셨다. 매우 학술적인 내용으로, 내가 이해한 바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고린도전서 6:9-10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사람의 유형을 말하고 있다. 그 중간에 위치한 단어는 탐색과 남색으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특별하게 강조한 것은 없고 그저 다른 것과 함께 목록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디모데전서 1:8-11 역시 이와 유사하게 “율법은 선한 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 말하며, 악인으로 여겨질 만한 사람들의 예를 보여준다. 두 본문 모두 그저 용납될 수 없는 이런 저런 행위를 모아놓은 중에 슬쩍 지나갈 뿐으로,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둔다거나 집중하는 일이 없다.
○ 이러한 ‘악덕’ 목록은 신약과 다른 기독교 문헌 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로마, 유대 저술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 목록은 진부한 것으로, 그저 목록 내의 개개의 사안에 대하여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 수사적인 목적을 지닌 것일 뿐이다. 성경 기자들도 이전의 문헌에서 그런 목록을 가져다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이전의 문서로부터 취한 관습적인 수사적인 목록일 뿐이라는 것이니, 남색 등으로 번역된 단어는 더욱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고린도전서 6:9-10과 디모데전서 1:8-11에 나타나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 목록조차 동성애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탐색’과 ‘남색’이라는 단어는 본문에 나타나는 헬라어를 제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다.
○ 고린도전서 6:9에서 ‘탐색’으로 번역된 ‘말라코이’는 ‘부드러운’이라는 뜻으로, 사람에게는 ‘게으른, 제멋대로의, 자기 조절이 안 되는’ 등의 뜻으로 사용되며, 특히 남성에게는 “여성처럼 약한 존재로 간주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남성을 “여성 같다”고 부르는 것이 동성애를 뜻하는 건 아니다. 이는 그저 ‘부드러운 자’ 혹은 ‘여자 같은 자’를 뜻할 뿐이다. 즉, 동성애 혐오가 아니라 ‘여성혐오’(gyno-phobic)를 표현하는 것으로, 남성의 행위가 여성처럼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디모데전서 1:10에서 ‘남색’으로 번역된 ‘아르세노코이타‘는 성경에 매우 드물게 사용되고 있어 뜻이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이를 ‘아르센(남성)’과 ‘코이테이(침대 또는 성관계)’로 나누어 ‘다른 남자와 함께 침대로 가는 남성’을 뜻한다고 판단해 동성애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Dale B. Martin은 그러한 합성어의 의미를 각 단어의 조합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영어 understand의 뜻이 under와 stand의 뜻을 조합한 것과 다르다는 예를 들고 있다. Martin은 그 단어가 독립적으로 사용될 때 전형적으로 그것은 ‘성적 부도덕’이라기보다는 ‘경제적 불의나 착취’와 관련되므로 ‘아르세노코이타이’는 동성애가 아니라 성 착취를 가리킨다고 결론 내린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적지향으로서의 동성애’는 19세기 후반에야 밝혀진 것으로 성경 기자들은 알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한 ‘동성성행위’를 말할 뿐이다.
둘째, 창세기 19장과 사사기 19장의 사건은 나그네(약자)에게 폭력적인 남성들이 드러낸 ‘사회적 지배욕’을 고발하는 것이다. 율법서는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성성행위’를 언급하고 있다.
셋째, 복음서는 ‘동성성행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서신서는 악행을 고발하는 목록에 동성성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동성성행위’를 포함한다는 것조차 동의하지 않는다.) 서신서의 본문들은 명백히 자기 마음대로 온갖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짓밟는 행동을 규탄하고 있다.
넷째, 따라서 율법서와 서신서에 언급된 ‘동성성행위’를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성적지향이 달라 곤경을 겪고 있는 ‘성적지향으로서의 동성애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
이 모든 논의에 대한 결론은 진규선 목사께서 답신의 말미에 정리한 다음과 같은 언급으로 갈음할 수 있겠다.
“성경이 동성애에 대하여 말하는 바는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만약 동성애가 착취라면 그것은 잘못이다. 만약 동성애가 우상숭배에 뿌리박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만약 동성애가 누군가의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이다. 만약 동성애가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의 표현이라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애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55] 잭 로저스 <예수, 성경, 동성애> 한국기독교연구소, 2015
[56] 스위스 바젤대학 조직신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