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살펴보기 (12ㆍ完)
지난 6월말, 정의당에서 발의한 차별금지법을 보수 기독교계에서 반대하고 나서면서 촉발된 동성애 논쟁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확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전의 반동성애 주장이 소수에 한정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보수 교단 대부분이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비록 한국에서 떨어져 살기는 하지만 보수 교단에 속해있으니 그 여파가 곧 내게도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별금지법이 작은 자를 귀히 여기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법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근거로 이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들었을 때 몹시 당혹스러웠다. 이에 대해 나름의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가져왔던 생각을 다시 점검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1) <차별금지법>이 신앙의 자유를 속박하는지, 2) 동성애는 타고난 성적지향인지 아니면 전환치료가 가능한 질병인지, 3) 성경은 동성애를 죄로 여겨 금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죄로 여겨 금하시는 것인데, <차별금지법>은 오히려 동성애를 보호할 뿐 아니라 이를 죄라고 설교하는 것조차 막는 악법이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비롯한 23가지 사유로 인해 차별이 일어나는 것을 금지한다. 여기까지라면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금지 대상을 ‘고용, 재화ㆍ용역ㆍ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ㆍ훈련기관의 교육ㆍ훈련, 행정서비스’와 같이 네 가지 영역으로 한정했다. 따라서 이 법으로 교회에서 설교 내용을 제한할 수 없다. ‘시설의 공급이나 이용’이 금지영역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방송 설교가 금지대상이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방송이 시설인 것은 맞지만 ‘방송 이용 제한’을 금지할 뿐이다. 방송 내용은 금지 대상이 아니므로 반동성애 설교를 제한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동성애가 선천적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뜨겁고 각각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학설도 적지 않다.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동성애는 성적타락의 결과이므로 전환치료를 통해 이성애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는 학설의 문제가 아니라 임상의 문제이다. 어느 학설이 맞는지 판단할 게 아니라 실제로 임상에서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확인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
이를 위해 현 시점에서 유효한 국제기구 및 각 임상 관련학회의 표준을 살펴본 결과 하나같이 “동성애는 타고난 성적지향이므로 바꿀 수 없으며, 전환치료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질병분류(ICD-10)에서 ‘성적지향 자체는 질병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57] 세계정신의학회는 2016년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이며 질병이 아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58] 미국정신의학회는 1973년 국제 정신과 진단표준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서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서 삭제했다. 미국심리학회는 2009년 “동성애는 성에 대한 인간의 정상적인 감정으로 정신장애나 발달장애가 아니다”는 보고서를 발간했다.[59]
세계정신의학회는 2016년 성명에서 “타고난 성적지향이 바뀔 수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고, 전환치료는 편견과 차별을 조장할 뿐 아니라 건강에 유해하며, 장애가 아닌 것을 치료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고 밝혔다.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년 “전환치료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았고, 전환치료를 시도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으며, 안전하게 동성애를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신뢰할만한 증거도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60] 미국심리학회는 2009년 보고서에서 “전환치료는 확인된 과학적 사실을 거스르는 것으로 진료지침 위반이다”고 밝혔다. 미국의사협회는 2018년 교정치료나 전환치료에 반대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보고서를 발간했다.[61]
‘성적지향으로서의 동성애’는 19세기 후반에야 밝혀진 개념이기 때문에 성경 기자들이 알 수도 없고, 따라서 성경이 동성애를 죄로 여겨 금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성경은 단지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한 ‘동성성행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동성애 관련 본문이라고 주장하는 창세기와 사사기의 사건은 폭력적인 남성들이 약자인 나그네에게 드러낸 ‘사회적 지배욕’을 고발하는 것이다. 복음서는 동성애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서신서에 나타난 동성애 관련 본문은 그것이 동성애 혹은 동성성행위를 의미하는 것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자기 마음대로 온갖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짓밟는 행동을 규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소수자들은 욕망을 참지 못해 누구라도 범하고 관계하는 이들이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주어진 정체성 때문에 동성을 지향하는 이들이다. 성적지향이 달라 곤경을 겪고 있는 이런 이들에게 ‘동성성행위’의 해악을 물을 수는 없다.
며칠 전 보수 기독교계가 동성애를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쓴 칼럼을 읽었다.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한국교회는 무언가를 반대하고 불안을 조장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구현해 왔다. 타인을 죄인으로 규정하면서 자신을 의인으로 여겨온 것이다. 누군가를 부정하면서 자기 정당성을 추구하는 신앙인 셈이다. 반공주의가 대표적이다. 반공주의가 많이 희석되니까 이제는 동성애를 이용하고 있다.”
“극우적인 성격의 기독교 분파에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으로 대표되는 젠더이데올로기를 주체사상을 따르는 좌익-종북의 투쟁도구로 인식한다”는 논문을 읽은 일도 있다. 젠더이데올로기 자체가 아니라 좌익을 배척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의 연장선에서 차별금지법에 포함된 출신국가, 인종, 종교와 같은 다른 차별사유 역시 반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실도 그렇다.
나는 ‘가진 것’도 없으면서 평생 ‘가진 자’의 논리로 살아왔다. 그 논리로 약자를 비판하고, 때로는 혐오하기도 했으며, 그들을 차별하는 일에 동조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십여 년 한국을 떠나 살면서 비로소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이 예수정신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정신을 정면에서 거스르는 것인 줄 깨달았다. 어쩌면 내 완고한 생각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으니 살던 곳에서 멀찌감치 띄워 놓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보니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차별금지법은 약자를 혐오하지 말고 차별하지 말자는 법이다. 어느 누구도 남을 혐오하거나 차별할 권리는 없다. 그것은 권리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은 누구의 권리도 제한하지 않는다. 이 법이 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겠다는 선언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코 예수정신일 수 없으니, 예수정신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주장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차근차근 살펴본 것처럼, 1)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에 반대하거나 그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으며, 2) 동성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므로 질병이 아니며 따라서 전환치료가 불가능하고, 3) 성경에서는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한 폭력으로서의 성행위를 금하고 있을 뿐 성적지향으로서의 동성애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삼위 하나님의 한 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자기 신앙으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폄훼하고 적대시하는 종교는 기독교 말고 본 일이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인들의 무례함에 늘 몸 둘 바를 모르고 살았다. 신앙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무례함이 혐오를 넘어 이제는 차별을 정당화하기에 이르렀다. 비단 동성애 논쟁 뿐 아니다. 무슬림을, 난민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을 오히려 신실한 것으로 여긴다. 과연 그런 혐오와 차별이 여기에 그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면 안 된다고 이렇게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나도 아직 그들에게 흔쾌하게 다가가지 못한다. 어디 동성애자뿐이겠는가. 무슬림, 난민, 나와 출신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른 이들에게 아직도 거리감을 느낀다. 비극적인 것은 우리보다 낫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법에 대해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동성애가 선천적이 아니라는 학술논문도 적지 않다. 수 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에 대한 해석이 학자마다 다른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정신이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번 차별금지법 파동이 오히려 모든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신앙이라고 여기던 것이 과연 예수정신에 합당한 것인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완고한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니 스스로의 힘에 의지해 될 일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할 뿐이다.
[57] WHO ICD-10 F66 Psychological/behavioral disorders associated with sexual development and orientation; “Sexual orientation by itself is not to be regarded as a disorder.”
[58] 세계정신의학회 ‘성별정체성 및 동성애 관련 성명서(Position Statement on Gender Identity and Same-Sex Orientation, Attraction and Behaviors)’, 2016.10
[59] 미국심리학회 ‘성적지향에 대한 올바른 치료(Appropriate Therapeutic Responses to Sexual Orientation)’, Executive Summary, 2009.08
[60] 미국정신의학회 ‘동성애 관련 성명서(Position Statement on Issues Related to Homosexuality)’, 2013.12
[61] 미국의사협회(AMA) ‘Health Care Needs of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nd Queer Populations’ H-160.991, Year last modified: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