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2014년 6월 저자를 민사 및 형사 고소하고, <제국의 위안부> 출판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그 결과, 민사1심(손해배상)에서는 배상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형사1심(명예훼손)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는 벌금이 선고되었습니다. 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은 일부가 받아들여져 34곳을 삭제하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이에 저자는 이를 반영한 삭제판을 출간했습니다. 저자는 2017년 10월 형사2심 결과에 불복해 즉각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이며, 대법원 심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나머지 소송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저는 <제국의 위안부>, 이로 인한 소송 관련 기록인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의 출발점이 된 <화해를 위하여>를 읽고 소송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저자의 저서를 읽어가면서, 또한 소송자료와 언론에 나타난 반론과 재반론, 비난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 이 모든 논란은 저자의 의도와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피해자들이 주장한 대로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독할 여지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무리한 주장을 손해배상 1심, 출판금지 가처분 1심,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소송 2심에서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오직 무죄를 선고한 명예훼손 형사1심만 저술의도를 명확히 파악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며칠 전, ‘독자’로서 관련 서적과 소송자료를 읽은 것을 정리해 의견서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쓰일지도 모르겠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까 해서 쓴 것입니다. 저자의 동의를 얻어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 저자가 규정한 대로 <제국의 위안부>는 역사를 둘러싼 사회현상과 담론을 고찰하기 위해 저술한 ‘메타역사서’로, ‘역사에 대한 해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실적시’보다는 ‘의견표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피해자들은 ‘출판금지 가처분 변경신청’을 통해 “허위사실을 전파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소송의 논리를 스스로 허물었습니다. 재판부에서는 이 책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의 방안을 제시한 단순한 의견표명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보호영역 내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표현 중 34곳의 삭제를 인용했습니다. 재판부의 판단과 일부 삭제 인용은 서로 모순된 것으로 보입니다.
○ 저자는 이 책에서 “당시 실정법에 의하면 ‘강제연행’이 아닐 수 있으나 실제로는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이 아니라 ‘제국’이라는 ‘구조적 강제’가 연행했다”고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사2심 재판부는 “일본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독자들이 받아들이도록 서술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독자의 오독 책임까지 저자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 대법원 판례에서는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행위일지라도 ‘가치판단’이나 ‘의사표명’에 해당하면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책은 ‘역사에 대한 해석’을 다룬 ‘의견표명’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형사1심에서는 이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반면에 형사2심에서는 “표현 일부가 허위이고 그로 인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것을 저자가 인식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재판부에서는 결정문에서 “학문 연구는 기존 사상이나 가치체계와 상반되거나 저촉된다 해도 용인해야 한다. ‘공적관심사가 된 역사적 사실’에 관한 표현에 대해서는 피해자 명예 못지않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습니다. 이 책은 여기서 특정하고 있는 바로 그 ‘공적관심사가 된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삭제요청 표현 중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 누군가 명예훼손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어 출판물에 이의를 제기했다면, 그 결론은 출판금지이거나 출판허용 둘 중 하나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판물 한 문단 한 단어를 떼 내어 이를 평가하고, 비판하고, 재단한다면 어떤 저자도 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이 책에 대한 제반 소송은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할머니들 이름으로 제기되었으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피해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지원단체의 운동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저자를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원단체에서 소송을 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이나 ‘일본군 협력자’로 매도하는 등 허위사실을 전파해 자신들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했다는 이유로 위안부 할머니 아홉 분이 이 책의 저자인 박유하 교수를 상대로 2014.06.17 손해배상청구 및 출판금지 가처분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아울러 검찰에 형사고발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보도로만 알고 있던 중 지난해 비로소 <제국의 위안부>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보도로 알고 있던 것과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년 4월 이슈가 된 ‘정의연’ 문제 때문에 이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때 저자가 소송 와중에 출간한 ‘비판에 대한 반론’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와 ‘소송 과정’을 정리한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을 함께 읽었습니다. 아울러 저자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소송 관련 자료도 살펴보았습니다.
이 책의 출발점이 된 <화해를 위해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자는 “현재 교착 상태에 있는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양국 화해의 길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현상을 인정하고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법의 일환으로 위안부 문제를 조망한 <제국의 위안부>를 저술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역설하는 주장이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피해자들이 그런 고통을 겪게 만든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서 오히려 드러난 것보다 더 큰 피해를 겪었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라는 정도를 이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소송 자료를 살펴본 결과,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의 주장이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민사 및 형사 재판부의 결정 또한 오해와 상호 모순의 여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독자로서, 그리고 법의 통제 아래 있는 시민으로서, 이 과정에서 갖게 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책이 소송의 대상이 된 만큼 이 책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술서와 대중서가 일반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같을 수 없고, 역사서냐 문학서냐에 따라 허용되는 해석의 폭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학술적인 내용을 담기는 했지만 저자 스스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대중에게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을 알리기 위해 저술하였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상정한 대중서라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학계’를 독자로 하는 학술서보다는 사회적인 파장이 클 수 있겠습니다.
문학서가 아닌 건 분명해 보이는데, 과연 이 책을 역사서로 분류할 수 있는지 애매합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를 둘러싼 사회현상과 담론에 대해 고찰한 메타역사서’[1]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에서 인용한 역사학자 헤이든 화이트[2]는 자신의 저서 ‘메타역사(Meta-history)’에서 “역사는 언어로 시대와 사건의 상을 전달하는 만큼 본질적으로 ‘수사적(rhetorical)’이고 ‘시적(poetic)’이며, 따라서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을 전할 때 메시지나 이데올로기가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결국 ‘역사’라는 것 자체가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하지만 결국 해석의 학문이라는 말로 들립니다.
옥스퍼드 사전은 메타역사를 ‘역사철학(the study of the philosophy of history)’ 또는 ‘역사서술방식(study of the structure of historical narrative)’으로 정의합니다. 이는 ‘역사’에 대한 서술 중 ‘해석’에 방점을 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자 스스로도 ‘위안부 역사를 마주하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할 생각으로 저술했다고 밝히고 있으니 ‘메타역사’는 ‘역사해석’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결국 이 책은 ‘역사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에 ‘사실적시’보다는 ‘의견표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민사1심 및 형사2심 재판부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받아들였다면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에 해당 표현을 삭제하고, 손해를 배상하고, 범죄에 상응한 벌금을 선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피해자들은 저자가 ‘허위사실’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므로 (1) <제국의 위안부> 출판을 금지하거나 해당 표현을 삭제하고, (2) 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며, (3)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2020년 6월 현재, 민사소송에서는 출판금지 가처분이 인용되어 일부 표현을 삭제한 삭제판이 출간된 상태이고, 피해 보상금은 각 1천만 원으로 결정되었으며, 저자는 각각에 대해 상급심에 항소했습니다. 형사소송은 1심에서 무죄로 판결했으나 2심에서 벌금 1천만 원 형이 선고되었으며, 저자가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여 계류 중입니다.
저는 이 책에 서술한 내용이 ‘사실인가 허위인가, 사실적시인가 의견표명인가’하는 것이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에서 다투는 문제의 출발점이자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들은 이 책이 ‘허위사실을 진실한 사실인 것처럼 적시’하고 있어서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가. 민사소송
<제국의 위안부> 표현 중 109곳을 문제 삼아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4개월 후 이를 53곳으로 변경하고, “허위사실을 전파해 명예를 훼손했다”[3]는 당초 소송 사유를 “왜곡해 표현했다, 상반되는 주장을 했다,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4]고 변경했습니다. 아울러 ‘출판금지’ 요청을 ‘문제표현 삭제 후 출판’하는 것으로 변경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중 34곳에 대한 삭제요청을 인용했습니다.[5]
당초 삭제요청한 표현은 전체 109곳이었으나 가처분 변경신청 과정에서 69곳을 제외하고 13곳을 새로 추가해 최종 53곳이 되었습니다. 제외한 곳은 “근거를 제시했거나, 의견표명에 해당하거나, 위안부를 오히려 차별의 대상으로 표현했거나, 지원단체의 운동방식을 비판”한 내용이었습니다. 분명한 근거 없이 졸속으로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피해자 스스로 “허위사실을 전파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소송의 논리를 허물었는데도 재판부는 문제표현 중 일부에 대한 삭제요청을 인용했습니다. 저자로서는 패소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영역에 해당하고, 저술 동기는 피해자들을 직접 비방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일 양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나름의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6]
“법적인 국가책임이나 청구권협정에 대한 서술은 구체적 사실의 적시라기보다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저자의 단순한 의견표명으로서, 헌법상 보장되는 학문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있다. 따라서 법원이 사전적으로 그 표현을 금지하기 보다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 등을 통해 시민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건전하게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은 이러한 해결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성숙한 것으로 보인다.”[7]
재판부가 이 책의 저술의도를 제대로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견해가 ‘출판금지 가처분 일부 인용’과 어떻게 한 결정문 안에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합니다.
나. 형사소송
명예훼손은 그 출발이 “사실적시냐, 허위사실이냐”, “단순 명예훼손이냐, 출판물에 의한 것이냐”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이 책 때문일 것이니 당연히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형법 309조)에 해당하겠습니다. 그러나 검사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단순 명예훼손’(형법 307조)으로 기소했습니다. 이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도 ‘비방목적’이 없으면 ‘단순 명예훼손’으로 처벌한다는 대법원 판례[8]를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이 책의 표현을 ‘허위사실’로 인정해 형사1심 및 형사2심에서 모두 이에 해당하는 형량인 ‘징역 3년’을 구형했습니다.
형사1심 재판부는 “검사가 ‘진술이 …이므로 그 본질이 …이었다’라고 추론하는 것을 볼 때 검사의 주장은 ‘사실적시’가 아닌 ‘의견표명’을 문제 삼는 것에 불과하다”[9]고 지적하면서 “저자가 서술한 내용이 허위가 아니고, 설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이는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위법이 아니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10] 허위가 아니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저술되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형사2심 재판부는 문제의 표현 35곳 중 24곳은 ‘의견표명’으로 판단했습니다.[11] ‘사실적시’로 판단한 것은 11곳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견표명’이라는 것은 ‘허위사실’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 재판부는 문제표현 대다수를 ‘의견표명’으로 판단하고도 전체적으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1천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사실적시’ 판단을 위해서는 35곳의 표현 하나하나를 살폈으면서도 형량의 결정적 요소인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뭉뚱그려 판단했습니다.
“많은 조선인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했고, 애국적으로 일본군에 협력하고 함께 전쟁을 수행했으며, 일본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독자들이 받아들이도록 서술되어 있다.”[12]
저자는 이 책에서 “‘강요된 자발성’에 의해 위안부가 되었고, 당시 실정법에 의하면 ‘강제연행’이 아닐 수 있으나 이는 제국에 ‘구조적인 책임’이 있다”고 누누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결코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고 서술하지 않으며, ‘제국’이라는 ‘구조적 강제’가 위안부를 실질적으로 연행했다고 일관되게 서술합니다. 저자가 그렇게 서술하고, 그렇게 서술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하고, (저 또한 그렇게 읽은 것으로 미루어) 그것이 객관적 사실로 보이는데,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독자의 오독 책임을 저자에게 묻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해자들이 가처분 변경 신청을 통해 스스로 ‘허위사실’이라는 표현을 철회했습니다. 그런데도 형사2심 재판부에서는 이를 ‘허위사실’로 판단하고 벌금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물론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은 별개의 건이기는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명예훼손’을 형사처벌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명예훼손’으로 피소되면 최종적으로 불기소되거나 무죄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까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며, 이러한 위협이 강력한 위축효과를 발휘해 표현의 자유나 학문발달을 저해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자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피해자들은 저자가 “진실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공공의 이익과 무관하게,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형사 고소했을 뿐 아니라 출판금지 가처분과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검사의 기소내용과 형사1심과 형사2심에서 인용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명예훼손’은 (1)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지, (2)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인지, (3) 명예의 주체를 특정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피고발인의 행위가 이에 해당하더라도 그것이 ‘가치판단’ 또는 ‘의견표명’에 해당하거나 공공의 이익에 합하는 등의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범죄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범죄 인정 여부와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이 상반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형사1심 재판부는 “(1) 표현 내용을 전체적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취지가 불분명한 일부 내용만 떼 내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13], (2) 표현 내용이 ‘사실적시’가 아닌 ‘의견표명’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도 비판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로 이를 ‘명예훼손’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14], (3) ‘사실적시’로 보이는 경우라도 그 표현의 앞뒤 문맥과 그 표현이 이루어진 당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그 표현이 비유적이거나 상상적이고, 일반적으로 핵심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독자에 따라 달리 볼 여지가 있는 경우라면 그 표현은 ‘사실적시’가 아니고 ‘의견표명’이다”[15]라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형사2심 재판부는 문제표현 일부를 ‘의견표명’이 아닌 ‘허위사실적시’로 판단[16]한 후 “(1)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 점과, 그 사실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 성립한다[17], (2) 그 표현이 허위인 것을 인식하였는지 여부는 타인이 이를 알기 어려우므로 사실의 출처와 인지 경위를 토대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및 그로 말미암아 예상되는 파급효과 등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18]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형사2심 재판부에서 문제의 표현 35곳 중 24곳은 ‘의견표명’으로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말하자면 같은 사안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서로 다르게 판단한다는 것이니, 일반 시민으로서 법과 그 법에 따른 결정을 이해하는 일은 참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문에서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학문 연구는 기존 사상이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을 가함으로써 이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노력이므로, 사회에서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존의 사상이나 가치체계와 상반되거나 저촉된다 해도 용인해야 한다.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보호라는 법익과 학문의 자유 보장이라는 법익이 충돌할 경우, 학문의 자유로 얻어지는 가치와 명예보호로 얻어지는 가치를 비교해 규제의 폭과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공적관심사가 된 역사적 사실’에 관한 표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명예 못지않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 또는 표현의 자유 역시 보호해야 한다. 또한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에도 한계가 있어 진실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19]
이는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는 판례입니다. 이 책은 위 판례에서 특정하고 있는 바로 그 ‘공적관심사가 된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판례를 인용한 재판부’에서는 이 책의 ‘일부 표현을 삭제’하라고 결정한 것입니다.
저는 40년째 보고서 쓰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 제게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출판물 표현삭제’ 결정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고서라는 것이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특정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훼손’을 이유로 보고서 표현 일부에 대해 삭제 결정을 받은 경우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서이므로 이런 보고서보다는 사회적 파장이 클 수 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재판부가 인용한 대법원 판례와 같이 “학문 연구는 기존의 사상이나 가치체계와 상반되거나 저촉된다 해도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히고, 명예보호라는 가치를 훼손했다”는 부분을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피해자가 불편하게 여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이유가 된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위와 같은 판례를 스스로 인용했음에도 재판부가 피해자들이 요청한 표현의 ‘일부삭제’를 인용한 점입니다. 누군가 명예훼손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어 출판물에 이의를 제기했다면, 그 결론은 출판금지이거나 출판허용 둘 중 하나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판물 한 문단 한 단어를 떼 내어 이를 평가하고 비판하고 재단한다면 어떤 저자가 이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작가가 이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이는 다음과 같은 명예훼손 관련 대법원 판례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실한 사실’이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서,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하다.”[20]
또한 앞서 인용한 “표현 내용이 ‘사실적시’가 아닌 ‘의견표명’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도 비판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로 이를 ‘명예훼손’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판례[21]에도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록 명예훼손과는 무관한 보고서를 쓰는 걸 생업으로 삼고 있기는 합니다만, 책의 저술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일부 표현을 문제 삼아 삭제 결정을 내린 판결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저는 ‘출판금지’보다 ‘일부삭제’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더 압박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송을 제기한 위안부 할머니들 중 누군가 이 책을 읽고 모욕을 느껴 분개하셨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 같은 마음으로 위안부 할머니들께 알려드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를 소송으로 이어가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청했을 수도 있고, 주변에 누군가가 먼저 소송을 제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생각해서 제소하지 않았으면 좋았기는 했겠습니다. 그렇다고 위안부 할머니 스스로가 되었든 주변에서 제안을 한 것이든 제소한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소송을 제기한 할머니들은 모두 ‘나눔의 집’에 거주하셨고, 그곳 관계자가 할머니들이 고령으로 책을 읽을 수 없어 일부분을 발췌해 반복해서 읽어드렸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22]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서에는 출판금지 외에 저자가 피해자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접근금지’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저자가 피소되기 전에 할머니들을 만나고 지원단체의 운동방식을 비판한 점을 감안한다면, 소송을 제기한 데는 지원단체의 의도가 들어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원단체 의도에 맞추어 ‘왜곡된 책읽기’를 했다고 추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이 고소인에 들어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23] 이 책의 표현을 문제 삼아 삭제 요청목록을 작성한 한양대 리걸클리닉 지도교수이면서 책을 검토하고 고발자료를 만든 변호사가 ‘나눔의 집’ 고문 변호사라는 점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합니다.[24]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이 책과 관련한 일련의 소송은 피해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지원단체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으며, 결국 위안부 할머니들의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원단체의 운동방식에 비판적인 저자를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송을 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과 관련한 소송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독자로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지적한 표현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그럴만한 표현이나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저자의 표현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난해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책을 택해서 읽기로 마음먹은 독자의 수준에서는 그렇게 오해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독자가 오해할 부분이 없다 해도 피해자들이 불편하게 여겼다면 그것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출판금지 가처분 재판부가 결정문[25]에서 언급한 것처럼, (1) 저술 동기가 피해자들을 비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데 있고, (2) 이에 대해서는 표현을 금지하기 보다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 해소해야 하며, (3) 우리 시민의식은 이를 수용할 정도로 충분히 성숙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출판물의 일부삭제란 모든 형태의 글을 쓰는 저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40년을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고 살아온 제게 이 결정은 손해배상이나 벌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대중서와 거리가 먼 글쓰기를 하는 저도 그럴진대 대중서 저자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는 다른 어떤 제재보다 표현의 자유를 크게 압박하는 조치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출판금지 가처분 및 손해배상과 관련해 항소한 상급심에서, 또한 명예훼손으로 상고한 대법원에서 이 모든 문제점과 판결 상호간의 모순을 깊이 살펴 저자의 진의가 회복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이 책의 출발점이 된 <화해를 위해서>로부터 강조해온 저자의 주장이 학술적 사회적으로 논의되어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1]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 26쪽
[2]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 299쪽
[3] 가처분 신청서 2쪽
[4] 가처분 변경신청서 4쪽, 5쪽
[5] <표> ‘가처분신청 삭제 요청 표현 목록 비교’
[6] 가처분 결정 17쪽
[7] 가처분 결정 18쪽
[8] 대법원 1998.10.09 선고 97도158 판결
[9] 형사1심 판결 8쪽
[10] 형사1심 판결 4쪽
[11] <표> ‘검사 주장에 대한 사실적시/의견표명 판단 비교’
[12] 형사2심 판결 37쪽
[13] 대법원 2008.05.08 선고 2006다45275 판결
[14] 대법원 2009.04.09 선고 2005다65494 판결
[15] 대법원 2004.02.26 선고 99도5190 판결
[16] 형사2심 판결 37쪽
[17] 대법원 1991.03.27 선고 91도156판결
[18] 대법원 2014.03.13 선고 2013도12430 판결
[19] 대법원 1998.02.27 선고 97다19038 판결
[20] 대법원 1998.02.27 선고 97다19038 판결
[21] 대법원 2009.04.09 선고 2005다65494 판결
[22]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 247쪽
[23]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 249쪽
[24]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 173쪽
[25] 가처분 결정 17쪽, 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