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자기 몫을 잘 감당하며 사는 걸 보는 건 부모로서 큰 기쁨이다. 아니 부모가 가질 수 있는 기쁨의 전부가 아닐까 한다. 자식이 생각지 않았던 성악을 시작하고 꿈꾸었던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 아내와 좋은 부모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여간 기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내가 그다지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늘 일방적으로 의사를 전달했을 뿐 자식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체능은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가족 누구도 그런 재능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자식이 성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었던지 자식이 성악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고, 그것이 오늘의 자리로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자식이 노르웨이 무대에 오른 모습을 지켜보았다. 꾸준히 노력했다는 게 보일만큼 노래가 넓어지고 깊어졌다. 현지 신문에 상당한 호평이 실리기도 했다. 이전에도 다른 지방에서 공연하는 것을 본 일이 있었지만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는 게 몹시 고단한 일이겠더라. 몸이 악기이니 건강을 잘 돌봐 언제든 최상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돌이켜봐도 자식의 생각을 물어본 것은 놀라운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그 후로도 그렇게 자식의 생각을 물어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더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을 빼고 어떻게 그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