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 아범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번 주일부터 시작되는 새 오페라 리허설 때문에 극장으로 가야한다고 해서 굳이 기사를 자청했다. 택시 타고 가면 된다고 극구 사양을 하는데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이젠 뭐 하나 도와줄 일이 없는데 그렇게라도 피곤을 덜 수 있다면 오히려 내가 감사한 것이지.
작년에도 혜인 아범이 출연하는 오페라를 보기는 했다. 코로나 때문에 관현악 편성이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바그너 오페라를 피아노 반주 하나로 이끌어 가는 전대미문의 공연이었던지라 보고 나서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다행히 작년 가을 시즌 들어서면서 공연이 정상화 되어 이번에는 관객으로 가득 찬 객석에서 제대로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며칠 전 다른 곳에서 공연하는 걸 보기는 했지만, 그거야 어웨이 경기인 셈이고.
극장에 도착하니 혜인 아범이 리허설을 보려느냐고 묻는다. 부탁이라도 할 판이었는데. 자식 덕분에 텅 빈 객석에서 편한 자세로 앉아 오페라 한 편을 만끽하는 호사를 누렸다. 리허설을 봤으니 본 공연은 안 봐도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건 아니지. 그건 그렇고 비스바덴 극장의 천정화와 장식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열 시도 안 되어 잠자리에 들던 혜인이가 열한 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아빠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그렇게 좋은지 도대체 시선이 아빠에게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제 아빠는 내가 출장 다녀오면 오셨느냐고 인사 한 번 하는 게 전부였는데 말이다. 정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혜인 아범이 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