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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10.04 (화)

by 박인식

1.


미국 출장이 잡히고 제일 먼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 일정부터 확인했다. 마침 홍혜경이 백작부인으로 나오는 <피가로의 결혼> 공연이 있었다. 뉴욕 환승으로 항공권을 발권하고 오페라 표를 사고 아울러 극장 투어도 신청했다. 그때 이미 혜인 아범이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것이다. 워낙 오페라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자식이 전문 연주자가 되겠다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이니 오페라극장의 면면에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둘러보니 오페라가 예술이 아니라 산업이었다. 오페라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렇게 많은 인력과 시설이 투입되는 줄 짐작도 못했다. 의상이나 무대장치며 소품을 제작하는 게 거의 공장 규모였다. 그렇게 만든 물품은 인근 도시에 대규모 창고를 짓고 거기에 보관한다고 했다. 무대는 객석에서 보이는 것만한 것이 서너 개가 더 있어 순식간에 무대를 전환할 수 있었다. 세계 유명 성악가들이 사용하는 분장실까지 공개했다.


로열오페라하우스(ROH)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오페라극장이다. 어떻게 꼽아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오페라단 뿐 아니라 발레단과 오케스트라도 세계 정상급이다. 오늘 극장 투어에 참가해 돌아보니 전체적인 시스템은 대동소이하지만 규모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객석은 2,200여석으로 뉴욕 메트의 절반 조금 넘는 수준인데 무대 폭은 그보다 훨씬 좁게 느껴졌다. 혜인 아범이 일하는 비스바덴 극장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객석은 비스바덴 극장의 두 배나 되는데.


안내하시는 분이 어찌나 입담이 좋은지 설명하는 내내 폭소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러면서도 극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건물의 역사부터 시작해 건축양식까지 막힘없이 설명하는데 나는 그닥 그 자부심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건물양식으로 말하자면 엊그제 찾았던 비스바덴 극장의 아름다움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그저 소박하더라고 이야기하면 지나치려나?


안내하면서 사진은 왜 그렇게 못 찍게 하는지. 인터넷에 공개된 게 수두룩한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뉴욕 메트가 훨씬 관객친화적이 아닌가 싶다.


물론 오페라극장을 하드웨어로 평가할 것은 아니다. 출연진의 구성이나 연출, 무대장치를 아우르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이번 여행 동안 공연이 없어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는 게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이제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으니 ROH에 대한 평가는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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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몇 년 전에 교회학교 제자가 런던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어연수라도 하려나보다 생각했는데 이 년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났다. 간혹 소식을 주고받기는 하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먼저 말을 안 하니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난여름에 한국에 왔길래 한 번 볼까했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10월에 한 번 가겠다고, 그때 얼굴이나 보자고 통화만 했다.


그래도 선생이 왔다니 바쁜 중에도 무조건 내 시간에 맞추겠단다. 얼마 전 이사하느라 쉬지도 못했다면서도 반가워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얼마나 더 있을 생각인지, 영국에 오겠다고 생각했던 목표는 이룬 것 같은지.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행히 묻기 전에 먼저 설명을 해서 꼰대짓은 피했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느라 무척 고생했고, 지금은 도와줄 친구도 생기고 도움 받을 일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젠 어디다 가져다 놔도 잘 이겨나갈 것 같은 자신감이 가장 큰 소득인 것 같다고 했다.


그거면 됐지. 스스로 느끼는 대로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잘 이겨나갈 거라고 응원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고 또 했어야 할 말이기도 했다. 되도 않는 충고랍시고 주저리주저리 떠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나간 자리었고, 다행히 잘 견뎠다.


마음 같아서는 사진이라도 한 장 같이 찍고 싶었는데 런던에서 다섯 해나 지내면서 자기 사진 한 장 안 올리는 녀석인 줄 잘 아니 그러자는 말도 못 건넸다. 그건 조금 아쉽지만 밥 한 그릇 사 먹인 걸로 퉁치고.


그 녀석 보내고 옥스포드 광장에서 피카디리 광장으로 걸어 내려오다가 손흥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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