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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10.05 (수)

by 박인식

1.


우크라이나 전쟁은 주변 유럽 국가 뿐 아니라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사는 인접한 독일에서 느끼는 긴박함은 우리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다. 당장 에너지 요금이 올랐을 뿐 아니라 난방용 에너지 확보가 만만치 않아 올 겨울을 날 일이 큰 걱정이라고 한다.


러시아권에서 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런던으로 옮긴 윤영호 선생 내외께서 지난 여름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직접 인터뷰해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는 책으로 펴냈다. 책을 읽으면서 이전까지 피상적으로만 느끼던 전쟁이 구체적인 사안으로 다가왔고, 저자의 관점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전망하는지 궁금해졌다. 또한 작년에 출간한 <그러니까 영국>의 저자로서 생각하는 영국의 힘은 과연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런던을 찾을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두 분과 서너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출발해 정치, 문화, 예술, 그리고 자녀교육까지 화제가 넘나들었다.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가져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나는 좋았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뺏어 폐가 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럴 분들이 아니시지만 멀리에서 찾아온 정성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두 분과 자택 인근 덜리치 미술관에서 만났는데,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윤지영 선생의 안내로 덜리치 미술관을 돌아보는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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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쩌다 보니 음악을 좋아하고 꽤 가까이 지내기도 하는데 미술은 잘 알지도 못하고 가까이할 기회도 그다지 없었다. 런던에 와서 로열오페라하우스를 찾아본다고 하니 윤지영 선생께서 내셔널갤러리 표를 보내주시마고 했지만 볼만한 식견이 없어 극구 사양했다.


오늘 윤 선생 내외께서 맞아주신 곳이 자택 인근의 자그마한 미술관이었다. 작다고 만만히 볼 것이 아닌 것이 유럽 최초 개인미술관이었고 렘브란트 작품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아는 게 없다고 해도 미술관 앞에서 권하는 것을 사양하는 것도 그렇고 렘브란트라는 말에 얼른 따라나섰다.


여행을 가면 음악가와 관련된 곳은 박물관이나 생가는 물론 무덤까지 찾아갔지만 미술관은 가본 일이 없다. 그러니 세계적인 명화를 볼 기회는 더더욱 없었고.


미술관 규모와 다르게 전시된 렘브란트의 작품이 서너 점, 루벤스의 작품은 열 점이 넘는다. 다른 방에서 특별전이 열리기는 했는데 비구상 성격의 작품이어서 그저 아름다운 그림에만 정신이 팔렸다. 두 화가의 작품 말고도 성경을 주제로한 작품도 꽤 되었는데, 모두 이탈리아 화가 작품인 것을 보면 당시 화단의 흐름을 짐작할 만하다.


렘브란트 작품 중 <창가의 소녀>가 유명하다는데 그보다 화가가 말년에 그렸다는 외아들 초상화에 눈길이 끌렸다. 렘브란트는 말년에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 외아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초상화를 그리고 곧 이어 아들이 죽고 한 해쯤 뒤에 렘브란트도 죽었단다.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 외아들이 죽었으니 그것이 그가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거나 최소한 죽음을 재촉하였을 것이다.


공교롭게 바로 그 곁에 루벤스가 그린 딸 초상화가 걸려 있다. 초상화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세 살 생일을 며칠 남겨놓고 죽었다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는지 초상화 그릴 당시 화가는 전혀 딸의 죽음을 짐작하지도 못했단다.


두 초상화의 사연을 읽고서 한참 발을 떼지 못했다. 화가로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돌아서는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외아들을, 첫 딸을 잃고 자기가 그린 잃은 자식의 초상화를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고 보면 두 작품이 함께 걸린 것이 우연은 아닌 듯싶다. 큐레이터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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