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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10.08 (토)

by 박인식

독일에 여러 번 왔어도 분데스리가 경기를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실 내게 축구는 그저 TV에서 보는 경기였다. 한국 프로축구가 출범한지 그렇게 오래 되었어도 한 번도 경기장에 가본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국가대표 이재성 선수가 마인츠 구단에서 뛴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저 그런가보다 했다. 그 선수가 혜인네 교회에 출석하는데 신앙이 아주 깊고 몸가짐이 여간 반듯한 게 아니라고 했다. 교회 청년들과도 자주 어울리고 혜인네 집에도 청년들과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단다. 관심도 생기고 마침 그가 뛰는 경기가 있어 보러 가기로 했다.


사실 경기 내용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수준 높은 경기 영상을 볼 수 있어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관중들이 열광하는 모습도 영상을 통해서 본 것이기는 하지만 이미 눈에 익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고. 그러다 보니 눈길은 자연히 중앙공격수인 이재성 선수에게 쏠렸다. 이재성 선수는 후반 중반에 교체되어 나왔는데 그때까지 선취점을 잘 지키고 있던 팀이 열세에 몰리더니 종료 십여 분을 남기고 끝내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교체 이후 팀이 열세에 몰린 것이 이재성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면 그만큼 중요성이 입증되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런 걸 판단할 만큼 아는 게 있는 건 아니다.


경기 끝나고 사인이라도 하나 받아갈까 하고 교회 청년들과 기다렸다. 이재성 선수가 나타나니 출구에서 줄서서 기다리던 관중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던데 보는 내가 뿌듯했다. 그가 나타나니 사인해 달라, 사진 찍자는 팬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경기하느라 매우 힘들었을 텐데도 정성스럽게 그에 응하는 이재성 선수를 보니 연봉에 팬의 요청에 응대하는 대가도 들어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곳에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떠들거나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좀처럼 보지 못했다. 그런데 경기를 몇 시간 앞두고서부터 도시 거리가 구단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로 가득차고 시끌벅적 해지기 시작했다. 경기장을 향한 길목 곳곳에 맥주병이 쌓여 있고 시끌벅적하던 모습은 소란으로 바뀌었다. 경기 끝나고 전차를 탔는데 돼지 멱따는 소리로 꽥꽥 대는데도 항의는커녕 웃고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분데스리가 경기가 있는 날은 모든 게 허용되는 느낌이라더니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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