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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10.29 (토)

by 박인식

오래 전에 어느 철학자가 교회란 신앙을 빼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은 갖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재물을 더 바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금쪽같은 시간과 열정을 어떻게 하면 더 쏟아 부을 수 있을까 골몰을 하니 말이다. 그런 모든 것이 신앙의 본질과 관계없는 곳에 낭비되어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타고 나기를 소심하게 생겨먹은 나로서는 그것 말고도 머리가 깨질 일이 하나둘이 아니고 가슴을 짓누르는 일이 사방에 널렸는데, 교회 일 때문에 울화가 치밀고 안타까워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던 일은 이루 손으로 꼽을 수도 없다. 하지만 뭐한다고 이렇게 사서 마음고생을 하나 싶었어도 거기서 벗어난다는 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이런저런 계기로 귀국하면서 교회를 옮겼다. 낯설고 어색한 일이 적지 않았지만 교우들의 따듯한 환대에 힘입어 겉돌지 않고 곧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동안 온 힘을 다 쏟았던 일이 신앙과 무관했다는 것을 깨달아 교회를 옮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하나씩 확인하며 지낸다. 돌이켜 보니 무시해도 좋을 것에 너무나 오래 얽매어 살았다. 더 이상 거기에 힘을 소진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자유로운지.


교회 청소한다고 모였는데 소풍을 온 건지 잔치를 하는 건지 사방이 시끌시끌하다. 뒤뜰에서 거둔 한 아름 되는 호박은 다음 주에 있을 감사절 장식으로 넉넉하겠다. 감나무에서 딴 대봉 감은 커다란 소쿠리 셋을 채우고도 남았다. 먹고 떠드는데 정신 팔다 보니 대봉 감 몇 개 얹은 소쿠리 사진 하나 겨우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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