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자에게 성경을!
박경수, 박일영, 박형신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교육원
2022.10.31
기독교에서는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한 1517년 10월 31일을 종교개혁 기념일로 지내고 있으며, 지난 2017년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성대한 행사를 치른바 있다. 종교개혁이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한 것으로부터 시작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은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9월 성경’이 발간된 시점으로 보아야 한다. 1522년 ‘9월 성경’이 발간됨으로서 종교개혁이 전 유럽으로 확산될 수 있었으며 그 당시의 문화, 경제, 사회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루터의 ‘9월 성경’이 발간된 500주년을 맞아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교육원에서 장로회신학대학교 박경수 교수,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교육원 박일영 원장, 남서울대학교 박형신 교수를 초청해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심포지엄에서 배포된 논문과 강연, 질의응답 내용을 정리해 남긴다.
- 장로회신학대학 박경수 교수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경이 1522년 9월 21일 발간되었는데 흔히 이를 ‘9월 성경’이라고 부른다. 초판이 3천~5천 부 정도 인쇄되었으며 가격은 제본과 장식에 따라 0.5~1.5굴덴 정도였다. 당시 1굴덴은 하인의 8개월 월급에 해당하는 큰돈이었지만 이전에 사용된 성경 필사본이 30굴덴 정도였던 것이 인쇄술의 발달로 대폭 낮아진 것이다. 만약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루터의 개혁사상은 기껏해야 비텐베르크 주민 수천 명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잊혔을 것이다. 인쇄술은 종교개혁이 성공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카를 5세 황제는 보름스 칙령을 반포해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였으며, 루터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루터를 체포하는데 후한 보상을 내건다. 루터는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도움으로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신해 자기 신분을 ‘융커 외르크’라는 기사로 바꾼 채 지내면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다. 루터는 신약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후 오로지 번역에만 몰두해 3개월도 되기 전에 신약성경 번역을 마치고 당대 최고의 헬라어 학자인 멜란히톤의 꼼꼼한 검토를 거쳐 ‘9월 성경’을 출간한다. 루터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95개조 반박문일지 모르지만 항구적인 영향력을 미친 것은 ‘9월 성경’이다.
루터가 번역한 ‘9월 성경’은 최초의 독일어 성경이 아니다. 이보다 56년 전인 1466년에 스트라스부르에서 멘텔린 성경이 인쇄본으로 발간되었으며, 그밖에도 18종이나 더 있었다. 그런데도 ‘9월 성경’이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라틴어로 된 ‘불가타 성경’이 아니라 헬라어와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한 것이며, 고어(古語)가 아닌 현대독일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9월 성경’은 여성이나 겨우 독일어를 읽을 수 있는 정도의 평신도들에게까지 널리 읽혔고, 그 성경을 읽은 평신도들이 사제나 신학자와 복음에 대해 논쟁을 벌일 정도로 빠르게 성경을 이해하게 되었다. 루터의 ‘9월 성경’은 문학적이면서도 이해가 쉬운 문체를 택했기 때문에 독일 언어에도 지대한 공을 세운다.
루터는 ‘9월 성경’ 서문에서 성경을 어떤 방식 어떤 관점으로 읽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루터는 요한복음, 로마서, 베드로전서를 모든 책 중의 핵심이자 진수라고 말한다. 목차에서는 신약 27권 중 23권은 이름 앞에 일련번호를 매겼지만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일련번호도 매기지 않고 이름에 Saint라는 호칭도 붙이지 않는다. 루터는 그 중 특히 로마서를 중요하게 여겨 로마서 서문은 다른 서문보다 10배 이상 길게 썼다.
-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교육원 박일영 원장
루터는 “말씀이 스스로 일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는 각 사람들 손에 성경을 쥐어주기만 하면 되고 그 후에는 말씀이 스스로 일하실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성경을 번역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루터는 자신의 신학 주제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구체적으로는 ‘죄인으로서의 인간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규정했다. 이 관계를 루터는 ‘칭의론’ 또는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라는 말로 정리한 것이다. 루터는 로마서 3:28을 번역하면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는 원문에 ‘오직’을 넣어 번역했다. 성경 원문에 아예 없는 단어를 임의로 넣었다는 강한 비판에 대해 루터는 원래 그곳에 ‘오직’이 들어가야 했던 것이라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고, 지금도 루터 성경에는 이 ‘오직’이 들어가 있다. 여기에서 믿음 앞에 ‘오직’을 붙인 것은 공적이나 선행과 같은 인간적인 것을 덧붙이지 말라는 뜻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루터의 ‘오직 믿음’이라는 칭의론이 행동과 책임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한다. 그에 대해 루터는 ‘칭의론은 여러 교리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교리’라고 강조했다. 루터는 또한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믿음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선한 열매를 맺는데,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강조한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회복되는 것이 ‘구원’이며, 그렇게 해서 인간이 올바른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의로움’”이라고 여긴다. 의로움이란 결코 인간의 책임이나 의무가 아니고, 의로움이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은혜일 수 없다는 것이다.
루터는 진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전통적인 해석을 넘어서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로마교회의 라틴어 정경을 거부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을 번역하되 당시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선포되기 위해 자국어인 독일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성경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하나님과 소통이 가능하도록 늘 새롭게 번역되어야 하고, 그 성경 말씀이 늘 새롭게 우리 삶 속에서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터는 ‘오직 성경’의 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세에 만연했던 ‘알레고리 (주관적) 해석’을 거부한다. 성경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면 해석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기 때문이다. 루터는 성경 자체가 말씀하는 그 본문을 문자적으로 역사적 배경 가운에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강연에서 박일영 원장은 “루터는 자신을 개혁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개혁을 추구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루터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했는가” 하는 내 질문에 대해 박일영 원장은 “루터는 ‘개혁’이 아니라 근원으로 돌아가는 ‘회복’을 주장했다”, 박경수 교수는 “개혁운동이 아니라 가톨릭에 의해 왜곡된 신앙을 바로잡는 ‘갱정(更正)운동’이다”, 박형신 교수는 “실제로 중국에서는 개신교회가 아니라 갱정교회(更正敎會)라고 부른다”고 답변했다. 결국 종교개혁운동은 있던 것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모습에서 벗어난 것을 원래 모습대로 바로잡는 회복운동이라는 것이다.
- 남서울대학교 박형신 교수
루터의 종교개혁 직전인 1516년에 로테르담 출신의 인문학자이자 신부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천 년 이상 군림해온 라틴어 불가타 성경의 오류를 확인하고 바젤에 보관된 사본들을 사용해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간한다. 에라스무스는 “헬라어에 숙달되지 못한 채 구원의 비밀을 다루는 신학을 연구하는 것은 가장 불건전하고 광적인 행위이다. 이 지식이 없다면 문자적 의미조차 발견할 수 없다”며 성경 원문에 대한 지식이야 말로 성경 읽기와 신학 연구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을 사용해 ‘9월 성경’을 번역한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은 모두 5판이 발간되었는데 이 중 루터가 번역에 사용한 것은 2판이다.
루터는 ‘9월 성경’을 번역하는 동안 직역보다는 의역, 특히 해석적 번역이나 신학적 번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 특히 로마서 3:28에서 원문에는 없는 ‘오직’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어 신학자들의 비판을 받는데, 이에 대해 루터는 ‘오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독일어 성경에서 비로소 원문의 느낌이 전달된다고 변호한다. 사실 헬라어 성경에는 ‘오직’이라는 표현이 없으며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 한글성경에도 ‘오직’을 추가하지 않았다. 루터는 다른 문서인 ‘시편 번역에 대한 변호’에서 “엄격한 직역은 본문이 의도하는 것을 놓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어떤 경우에는 단어를 매우 문자적으로 유지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단지 의미만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언급한다.
존 로스(1842-1915)가 만주에서 동료들과 함께 번역한 ‘예수셩교젼서’는 초기 한글번역 성경임에도 그 수준이 탁월하며 한국기독교의 귀중한 주춧돌이 되었다. 루터와는 달리 번역 초기단계에서 에라스무스 신약성경과 같이 신뢰할만한 성경 원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원천언어와 수용언어를 다루는 선교사들과 한국인들 사이의 의사소통마저 쉽지 않았다. 존 로스와 존 매킨타이어 선교사는 영어 사용자로서 성서 원어와 중국어는 알았지만 한글은 매우 서툴렀고, 한국인 번역자는 중국어는 상당히 알고 있지만 성서 언어와 영어는 알지 못했다. 번역자 누구도 원천언어와 수용언어를 모두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존 로스가 번역한 저본(底本)이 어느 것인지에 대해 이론이 많지만 현재로서는 신약성경의 경우 대표 저본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시점별로 또는 단편 성경별로 다른 저본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이밖에도 중국어 성경, 원어 성경 등 다양한 성경과 자료가 사용되었다고 본다. 초기에는 수용본문(Textus Receptus)을 바탕으로 하는 헬라어 신약성경을 사용했고, ‘시내산 사본’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881년 또는 1882년 이후로는 본문 비평을 거친 옥스퍼드 판 ‘개정역본 헬라어 성경’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연구에 따르면 마태복음 27:46과 마가복음 15:34의 ‘엘리’와 ‘엘로이’에 해당하는 번역어를 선택한 방법이나 1882년에 발간된 ‘예수셩교요안내복음젼서’ 초판에서 ‘간음한 여인 이야기(요 7:53-8:11)’를 삭제한 것으로 볼 때 “중국어 성경보다 원문 성경을 번역한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존 로스의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 출판 직전에 ‘개정역본 헬라어 신약성경’이 출간되어 최상의 한글 번역본을 위한 결정적인 성경 원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