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내외와 저녁 일찌감치 먹고 연주회 시작하기 전에 차나 한 잔 하려고 음악당에 올라갔는데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는 멀고. 생각만큼 춥지 않아 커피 사들고 마당 벤치로 나갔다. 마침 개기월식이란다. 오페라극장 지붕 위로 달이 이지러지는 모습 찍느라 모두가 모바일을 꺼내 들었다. 개기월식 보다 그게 더 장관이더라.
실내악 연주회에 온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음악이 금기인 이슬람 땅에서도 대사관저 음악회를 찾아다닌 사람이 서울 돌아오고 한 해가 넘도록 연주장 한 번을 찾지 않았다.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게으름을 불러온 모양이다.
박은희 선생은 칠순이 되도록 여전하시고. 그가 이끌어가는 실내악 연주회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악장 사이에 박수가 나와 민망했지만, 악장마다 박수치기 버거울 테니 끝나면 몰아서 치시라는 박은희 선생의 재치 있는 지적에 민망해 하던 이들도 모두 유쾌해졌다.
추울 줄 알고 입고 갔던 코트를 벗어들어야 할 만큼 날씨가 푸근했다. 친구 내외와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며 차 마시던 시간도 기억에 남을 만큼 푸근했고. 끝나고 돌아오는데 달은 원래 모습을 다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