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있으면서 가장 그리웠던 것이 산길이며 개천 길이었다. 너무 더워 걸을 생각조차 할 수 없고 초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곳에 살다 보니 그것이 그렇게 그리웠지만, 휴가로 잠깐씩 다녀갈 때는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제대로 누려볼 기회가 없었다. 돌아오기로 마음먹고 제일 먼저 떠올린 것도 코앞에 있는 산길이며 개천 길을 마음껏 누려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백련산이며 홍제천까지 몇 걸음 되지 않는 곳, 봄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안산자락을 건네다 볼 수 있는 그곳에서 이십 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고작 백련산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그곳이 그렇게 귀한 줄 알고 돌아왔으니, 남은 것이라고는 시간 밖에 없으니 이젠 산길 개천 길 걷는 걸 일상으로 삼으리라 결심했다.
며칠 전부터 단풍 들고 낙엽 쌓였을 안산자락길이 궁금했다. 열흘도 넘게 벼르기만 했다. 어제 교회 다녀오면서 오늘은 만사 제쳐놓고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다. 산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생각해보니 아카시아 향기 맡자고 친구 내외 불러 걸어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러고 여름 지나고 가을 지나 겨울을 코앞에 두고서야 다시 찾았다.
결심은 결심 이상의 의미가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번엔 그 결심이 몇 달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