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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11.13 (일)

by 박인식

아침에 교회 가는데 낙엽으로 뒤덮인 길이 얼마나 곱던지 생전 그런 내색 하지 않던 아내가 탄성을 다 질렀다. 어제는 교회에서 대강절 묵상집 발송하는 일에 손이 모자란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다. 길을 곱게 뒤덮은 낙엽도 그렇고 어제 함께 수고한 이들을 만날 생각에 그렇지 않아도 기다려지던 교회 가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교회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홀가분하고 주일이 기다려진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과장 좀 하자면 교회가 평안하니 인생이 평안하다.


예배 마치고 리야드에서 함께 교회 다니던 친구 내외를 만났다. 몇 집 건너 이웃이기도 했고, 사고방식도 비슷하고, 사우디 근무 말년에 소송으로 고통당한 것까지 같아 동병상련의 정을 쌓았다. 은퇴 선배랍시고 지적질이나 하고 닭고기 못 먹는 사람에게 굳이 ‘명동 영양 통닭’ 운운하는데도 사람 좋은 그는 그저 허허 웃어넘길 뿐이었다. 하지만 화제가 사우디 왕세자 방문으로 옮겨가자 전대미문의 사업을 벌인다는 왕세자가 정신이 있니 없니, 그럴 돈이나 있기는 하다니 하며 대동단결해서 씹어대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쪽으로는 쳐다도 보기 싫다며 몸서리치는 것으로 다시 한 번 동지애를 확인했다. 마지막 몇 년을 하도 힘들게 보내서 생각도 하기 싫었는데 그렇게라도 뱉어내고 나니 속은 시원하다.


리야드에서 송구영신예배 드리고 돌아올 때마다 늘 북적이던 명동이 그리웠다. 한겨울이라 해도 서울 봄 날씨 같은 곳이니 해가 바뀐다는 실감이 나지도 않고, 더구나 얼마 전까지는 성탄절이며 신년을 기념하는 것조차 단속하던 곳이었으니 예배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생경했는지 모른다. 연말이 멀지 않았다. 코로나 끝나고 보복소비가 만연했다는데 올해는 보복 연말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연말 명동 기분을 내보자고 하니 친구 내외도 흔쾌히 그러잔다. 친구 만나러 가는 길에 보니 예전에 아내에게 청혼했던 호텔 커피숍이 그대로 있더라. 그곳도 들러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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