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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28. 2022

네옴에 덤벼들기 전에 (1)

그렇지 않아도 전대미문의 초대형 건설사업인 네옴이 화제였는데 사우디 왕세자가 방한해 대통령을 만나고 기업 총수와도 면담을 갖고 나니 관련 기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혹자는 MOU를 스물여섯 건이나 맺었다는 것 때문에 당장에라도 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MOU는 글자 그대로 서로가 그런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양해각서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중동, 그 중 특히 사우디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발표 내용을 받아 적을 뿐 변변한 분석기사 하나 싣지 못하는 우리 언론에 실망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사우디 왕세자 방한과 관련한 기사에서도 예외 없이 제대로 된 분석 기사 하나를 찾지 못했다.


십 수 년 그곳에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한 사람으로 나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기회 닿을 때마다 그곳 사정을 설명해왔다. 물론 그곳에서 오래 일했다고 해서 그곳 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발주처, 한정된 지역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동안 한정된 사람을 만났을 뿐이다. 그렇기는 해도 보도 내용에서 상식 수준의 질문조차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으로 네옴 사업에 덤벼들기 전에 최소한으로 짚어야 할 점을 아는 대로 설명 해보려 한다.


정부 재정사업이 아닌 민간 투자사업


사우디에서는 발전소 건설공사를 투자 사업으로 전환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발주할 때 건설사업자(Contractor)가 아니라 전기공급사업자(IPP, Independent Power Producer)를 선정하는 것이다. 건설사업자는 발전소를 짓고 공사비를 발주처로부터 받는다. 이에 반해 전기공급사업자는 자기 돈으로 발전소를 짓고 준공 후 전기요금으로 사업비를 회수한다. 외상 공사인 셈이다. 그래서 건설사업자는 입찰 때 공사비를 제시하고 전기공급사업자는 전기요금을 제시한다.


사우디는 2021년 국가예산을 수입 2,264억 달러에 지출 2,640억 달러로 376억 달러 적자재정으로 편성했다. 2022년은 고유가로 인해 수입 2,787억 달러에 지출 2,547억 달러로 240억 달러 흑자재정으로 편성했다. 사우디 국가수입 중 원유수입(Oil Revenue)의 비중은 사우디 정부의 사업다각화 정책의 결과로 매년 줄어들고는 있지만 2021년까지는 70% 정도였다. 사우디는 OPEC 쿼터에 따라 하루 1천만 배럴 정도를 생산하며 이 중 30%를 내수로 사용하고 70%만 수출한다. 그러니 ‘원유수입=700만 배럴*유가*365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국가예산은 고정비ㆍ경상비 성격이기 때문에 지출을 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지출 예산을 조정하려 해도 그렇게 해서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올해 지출예산이 2,547억 달러이니 이 중 10%를 신규사업비로 전용하고 고유가로 인한 흑자재정을 더한다고 했을 때 한 해에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은 500억 달러를 넘기 어렵다. (‘국가 지출예산 10% 절감’은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기는 하지만)


네옴 전체 사업비는 5천 억 달러로 알려졌지만 계획이 계속 수정되는 과정에서 1조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우디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 네옴이 대표주자이기는 하다.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이와 함께 추진하겠다는 사업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리야드 남쪽에 건설하는 종합레저시설인 키디야(Qiddiya) 개발에 640억 달러, 리야드 디리야(Diriyah) 유적지 개발에 500억 달러, 네옴 인근에 이와 별개로 개발하는 복합휴양시설 홍해개발사업에 300억 달러, 선사시대 유적지인 알울라 관광단지 개발에 150억 달러,원자력발전소 건설에 800억 달러. 여기엔 허브공항 건설이나 제2국영항공 설립, 구체적인 예산을 확인하지 못한 몇몇 사업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하면 사우디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비 총액은 1조 달러에 육박한다. (네옴 사업비가 2배로 증가될 경우 총액은 1조5천억 달러에 이른다.) 이 사업비 총액을 정부 지출예산과 흑자재정으로 확보하는 데는 30년이 걸린다. 저유가로 접어들면 그 몇 배가 걸릴지도 모른다.


사우디의 자금줄이라고 하면 국부펀드(PIF, Public Investment Fund)와 아람코를 들 수 있다.


국부펀드의 자금규모는 어마어마하다고 짐작할 뿐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어딘가에 투자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자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투입하려면 투자된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회수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그것이 사우디 정부의 자금줄인데 성공할지 실패할 지도 모르는 사업에 쏟아 부을 수도 없는 일이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시가총액을 2조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 이 중 5%를 매각했지만 매각대금은 기대했던 1천억 달러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7~8백억 달러 정도였다. 아람코 시가총액이 1조5천억 달러 정도로 평가받은 셈이다. 물론 아람코 지분을 추가로 매각하면 상당한 자금을 확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람코 수입이 국가수입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람코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셈인데다가 사우디 내부의 반발도 적지 않으니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런 점에서 PIF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볼 때 네옴 사업은 국가재정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우디 정부에서도 투자를 유치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로 국가 지출예산을 조정해 확보한 자금과 PIF 자금으로 소요 예산의 30%를 충당할 계획이라는 소리도 들리고, 공공투자ㆍ민간투자ㆍ프로젝트 상장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보인다. 아무튼 네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금을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사우디 정부가 지급 보증을 서겠지만, 사업이 엎어지거나 추진이 지지부진해지면 그 부담은 기업이 그대로 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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