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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30. 2022

네옴에 덤벼들기 전에 (2)

독자적이고 자의적인 결정, 그리고 그것을 제어할 장치의 부재     


내가 부임하던 2009년 당시 리야드 시장이던 살만 왕자는 자기 앞에 동복형님이 넷이나 있어 국왕이 될 가능성이 희박했고, 더구나 살만 왕자의 다섯 째 아들인 빈살만 왕자가 왕세자가 된다는 것은 꿈조차 꾸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국왕에 오른 살만은 선왕이 왕세제로 책봉한 무끄린 왕자를 폐위하고 동복형님의 아들인 빈나예프 왕자를 왕세자로 책봉한다. 이때까지는 살만 국왕이 그와 그의 동복형제인 ‘수다이리 세븐’ 편에 서있는 그룹의 지지를 받는다. 그 그룹의 위세를 감안할 때 살만 국왕의 입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살만 국왕이 조카인 빈나예프를 왕세자에서 내리고 그 자리에 자기 아들인 빈살만을 앉힐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빈나예프와 빈살만의 권력 투쟁에서 빈살만이 우위를 차지해 실권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궁금해서 회사 사우디 파트너에게 물어보니 ‘수다이리 세븐’의 지지세력이었던 그가 그 결정을 매우 격렬하게 비난했다. 지지세력 모두 그렇게 비난한다고 했다. 왕실의 합의를 깨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7년 6월 왕세자에 오른 빈살만은 그해 11월 힘 있고 돈 있는 왕자 열한 명을 리츠칼튼 호텔에 감금하고 재산을 빼앗는다. 그때 환수한 재산이 1백 억 달러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면서부터 ‘수다이리 세븐’의 지지세력은 빈살만 왕세자로부터 등을 돌린다. 빈살만 왕세자가 자기의 지지세력이었던 기득권층과 대립하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왕자들 사이에서 총격이 벌어질 만큼 빈살만 왕세자의 자리가 굳건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빈살만 왕세자는 여성과 청년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데 힘을 쏟기 시작한다. 자신이 종교계나 기득권층과 맞설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복장 규제를 완화했으며, 청년들을 겨냥해 엔터테인먼트를 허용했다. 아울러 최대 현안인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자국민 의무고용정책인 사우디제이션의 고삐를 더욱 죄기 시작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역사에 유례가 없는 개방정책을 몰아붙이고 있다. 국가를 이끌어갈 당사자로서 국가발전을 위해 매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중동 전문가를 자처하는 어떤 이는 왕세자의 애국심이 대단하다고 추겨 세우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개방정책의 저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기는 해도 앞서 말한 여러 정황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런 그의 행보가 자연스럽다. 왕세자는 자신의 위상을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어떤 정책도 마다 않을 것인데, 그런 독자적이고 자의적인 결정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짐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년 초 사우디 정부는 자국에 중동지역본부를 두지 않는 기업에게는 사업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름뿐인 지역본부가 아니라 규모와 기능이 실질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올해 들어 44개 기업이 지역본부를 사우디에 두었다는 발표가 났지만, 그 중 25개 기업은 이전부터 사우디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한국기업은 아직 지역본부를 옮긴 곳도 옮기기로 결정한 곳도 없다. (검토 중이라는 기업은 있지만) 지사장들에게 물어보니 일관성 없고 때로 즉흥적이기까지 한 정책을 가장 큰 위험요소로 여기고 있었다.     


사우디는 2018년부터 부가가치세 5%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관세와 법인세가 있었을 뿐 거래세나 개인소득세도 없었다.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은 2015년에 발표되었고, 그로부터 3년 꼬박 부가가치세 홍보와 교육에 매달렸다. 우리도 상당히 여러 번 교육을 받았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6월, 사우디 정부는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가가치세를 15%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놀랍게도 7월 1일부터 적용한다고 했다. 적용까지 불과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것이다. 부가가치세 5%를 15%로 올리는 건 엄청난 부담을 안는 것인데, 기업이건 개인이건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얻어맞아야 했다. 그리고 올 여름 코로나가 진정되어가니 5%로 환원하는 걸 검토한다는 발표가 났다. 지금까지 달라진 건 없다.     


네옴 사업이 발표되고 나서 우선 규모에 놀랐다. 이후로 하나씩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의문이 늘어갔다. 단순히 규모나 재정 조달의 문제가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계획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네옴은 상식을 깬 계획이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판을 뒤집을 수 없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인류 역사의 획기적인 발전은 그런 무모한 시도로 이루었다는 주장도 옳다. 그러나 커튼 뒤로 하나둘 새어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점점 회의가 깊어진다.     


왕세자가 직접 진두지휘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2030년까지 획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몰아간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다. 문제점을 지적하면 받아들이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한 사람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도 놀랍지 않다.     


왕세자는 청년과 여성의 지지를 바탕으로 기득권층을 명분에서 앞서고 있다. 실권을 잡은 지도 이미 5년이 넘어 위상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는 해도 민심이 자기에게서 떠나는 것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붙들어둘 유인이 필요한 것이고. 지금까지는 그런 의도가 잘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의도하는 것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아 청년과 여성이 돌아설 경우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계획을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수정해야 할 텐데, 문제는 왕세자의 자의적이고 즉흥적인 계획을 제어할 장치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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