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Dec 10. 2022

네옴에 덤벼들기 전에 (3)

중국과의 경쟁


사우디 왕세자 방한으로 봇물 터지듯 쏟아지던 네옴에 대한 관심은 어느덧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한 일이다. 언제든 다시 끓어오를 소지는 다분하지만. 그 사이에 중국 시진핑이 사우디에 도착해 엄청난 환대를 받고 있다. 왕세자가 우군 중의 우군으로 여긴 트럼프가 방문했을 때도 그런 환대는 없었다. 사우디로서는 미국과 기싸움을 하는데 중국을 지렛대로 이용할 유인이 충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 못지않게 사우디에 투자할 큰 손인 것도 유례없는 환대의 한 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엊그제 양국이 34건 총액 293억 달러 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게다가 걸프협력체(GCC) 정상들과 합동회의도 갖는다고 하니 왕세자 방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방문의 격이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우디에서 평가하는 한국과 중국의 위상 차이인 것도 사실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사우디는 네옴으로 대표되는 Vision 2030의 소요재원을 조달할 능력이 없다. 얼마 전에 사우디 정부와 국부펀드에서 그 중 30%를 조달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우디가 돈을 쌓아놓고 사는 줄 아는 이들에게는 놀랄만한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그조차도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왕세자 방한 때 한국 굴지의 그룹 회장들이 마치 선생님에게 불려간 학생들 모양으로 그 앞에 공손히 앉아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그 사진을 게재하면서 언론사 대부분이 마치 왕세자가 각 그룹사에 일을 맡기겠다고 선심 쓰는 것처럼 보도했다. 며칠 전 관계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그때 왕세자가 그룹 회장들에게 일을 맡길 테니 투자를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나름 근거가 있는 관측이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사실 여부를 알 도리가 없다. 그렇기는 해도 “사업을 맡기겠다는 생각이었다면 사우디로 불러서 할 일이지 굳이 한국까지 찾아올 이유가 뭐 있겠느냐”는 반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중국이 2013년 일대일로 사업을 시작한 이래 올 상반기까지 쏟아 부은 자금이 1조 달러에 가깝다고 한다. 일대일로 자금을 받은 국가들은 빚더미에 앉았고, 그러다 보니 자금이 돌지 않아 중국의 금고가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나 하는 관측도 대두되고 있다. 그래도 중동 맹주로서 영향력이나 오일파워를 생각한다면 사우디 사업에 자금을 동원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2010년대 초반에 중국기업의 위력을 경험한 일이 몇 번 있다. 분야가 다르니 직접 경쟁한 일은 없지만, 한국기업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가격으로 입찰에 들어오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듣기로는 공사가 끝나면 본국으로 철수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수주할 때까지 현지에서 대기해서 철수비용과 투입비용을 절감한다고 했다. 대기하는 동안 급여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들렸다. 그러면서 그들이 사업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 이후 중국기업이 사우디에 진출한 것은 사업 자체보다는 에너지 확보를 위해 사우디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는 기사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동부 유전지대에서 이루어지는 항구 건설이나 철도 부설과 같은 기간산업에 중국기업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주베일 북쪽에 있는 라스알카이르 항구 건설은 중국항만공사(China Harbor)에서, 그곳까지 연결되는 북부철도는 중국철도건설공사(CRCC)에서 맡았다. 하지만 시작할 때부터 부실시공 문제가 불거져 결국은 제때 공사를 마치지 못했다. 한동안 중국기업의 입찰을 제한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중국기업은 꾸준히 공사를 이어갔다. 생각해보니 귀국할 때까지 몇 년은 중국기업의 부실시공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깨지는 것만큼 큰 선생이 없으니 그들의 기량이 이미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다.


우리회사는 경부고속철도 시범구간인 천안-유성 구간을 설계했다. 고속철도 첫 번째 설계사라는 말이다. 사우디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곳이라 고속철도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며, 그 분야 선두주자인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부임 당시만 해도 중국은 이제 막 고속철도 건설을 시작했던 터라 중국기업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의 고속철도 발주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에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고속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사우디 정부가 고속철도 사업을 발주할 무렵에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실적을 이미 쌓은 상태였다. 엄청난 실적을 쌓은 만큼 기술력도 향상 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한국기업이 고속철도 사업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미 우리를 앞서버린 사업실적과 수행능력, 우리보다 훨씬 낮은 공사비, 거기에 투자여력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만큼 막강한 중국은 사우디 건설 사업에 있어서 이미 우리 경쟁상대가 아닌지도 모른다. 거기에 국제정치까지 얽혀있어 같은 값이더라도 중국을 선택할 유인이 훨씬 많다. 이미 같은 값이 아닌지 오래되었지만.


그러니 우리가 뛰어들 곳은 중국이 이미 선점한 건설공사 분야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굳이 건설공사에 뛰어든다면 최첨단 시설, 아니면 소프트파워를 이용한 새로운 차원의 도시 건설 정도가 아닐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한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옴에 덤벼들기 전에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