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서 아닌 역사서
강성호
나무연필
2022년 10월 31일
우리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사용했다는 것이 우리 주장에 그치는 것인지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 금속활자가 만들어지고 조선시대에 와서 세계 인쇄문화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크게 발달했다는 사실은 여러 증거로 뒷받침되고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그에 비해 활자본 책이 그다지 많이 발간되지 않은 건 매우 아쉬운 일이다.
1517년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을 때 마침 개발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 보급에 날개를 달아줬고 결국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더라만 만약 우리가 금속활자로 많은 책을 발간했더라면 문화와 기술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는 그 원인이 비싼 종이 값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조선 전기 지식인들에게 기본적인 책이었던 <대학>이나 <중용>도 중간 품질의 면포 서너 필을 주어야 살 수 있었다고 밝힌다. 면포 서너 필의 가격은 논 두세 마지기 소출에 해당한다니 쌀 열 가마 내외, 요즘 시세로 환산하자면 이삼 백만 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게다가 조선 중기까지는 국가가 인쇄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책 제작과 유통도 독점했다고 한다. 저자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종교개혁 이전까지 로마가톨릭이 신자들이 성경 읽는 것을 금한 것과 같이 세력을 가진 이들이 권위와 지식을 독점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인쇄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책 발간이 어려울 것이고 책을 구할 수 있는 서점이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는 해방을 맞아 종이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고 국가의 통제가 없어지면서 책 발간과 서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증명된다 하겠다. 1945년 해방 당시 45개였던 출판사는 1948년 792개로 거의 스무 배 가까이 늘어난다. 당시 노점에서 사륙판 크기의 보급형 도서가 많이 팔렸는데 지금 시세로 만 원 남짓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해방 전에 출판사와 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가 첫 번째 서점으로 꼽은 ‘대동서시’는 1886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서대문 밖에 열었던 서점에서 출발한다. 4년 후 종로로 옮겨 ‘대동서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1894년에 새로 단장해 최병헌에게 경영을 맡긴다. 그곳 말고 당시에 책을 파는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목판으로 만든 책이 지물포를 통해 유통된 것이다. 종이 상인이었던 지송욱은 사업규모가 커지자 종이의 부가가치를 높일 방법을 고심했고, 그 결과 출판을 생각했다고 한다. 종이에 가치를 부여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출판업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서점은 1905년 전후로 전문적인 서적상이 등장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지송욱도 전문 서적상이 활자본을 발간하는 것을 보고 구식 목판본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신구서림’을 세우고 활자본 신서적과 신소설을 팔기 시작한다.
저자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등장한 근대서점은 주로 발간과 발매를 겸업한 출판서점이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한일병합이라는 시대적 상황 아래에서 출판서점은 구국의 시대적 고민을 담은 계몽서적을 다수 발간한다. 그러다 보니 1910년 한일병합 이후 탄압을 가징 심하게 받고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러는 가운데도 살아남아 출판서점의 역사를 이어간 ‘회동서관’은 11개 분야에 걸친 다양한 책을 발간했으며 처음으로 고소설을 제외한 모든 출판물에 대해 계약을 맺고 인세를 지급한다. ‘회동서관’은 1922년 발행된 <조선인 회사 대상점 사전>에 자본금이 무려 15만 원에 달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쌀 1만 가마 값이라고 하니 지금 시세로 치면 24억 원에 달하는 대단한 규모였다.
저자는 이와 같은 출판서점은 본연의 일 뿐 아니라 사회운동과 문학ㆍ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광익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 최초의 예술전문지 <삼광> 발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성악연주회’를 후원한다. 이밖에도 ‘박문서관’이 1938년 출간한 <현대걸작장편소설선집>을 통해 이광수ㆍ김동인ㆍ염상섭ㆍ현진건ㆍ박종화ㆍ나도향의 작품을 발굴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태동한 서점과 출판사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지만 그것보다는 저자가 제목으로 삼았던 본격적인 ‘서점의 시대’가 궁금했다. 저자는 중앙도서전시관이 대형서점의 효시이고 종로서적이 대형서점의 전형이라면 동화서적은 대형서점의 본격적인 출현을 알렸다고 설명한다. 1981년에 개점한 교보문고는 초대형서점의 효시이고. 그렇기는 해도 내게는 종로서적이 대형서점의 효시로, 교보문고가 초대형서점의 효시로 남아있다.
서점을 내 발로 찾아간 건 아마 고등학교 때 종로서적 간 게 처음 아닌가 한다. 물론 이전에도 참고서 사러 동네 서점을 가보기는 했어도, 지금 서점이라면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등학교 시절에 찾은 종로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는 종로서적이 서점업계에 미친 영향이 참으로 광범위하다고 설명한다. 손님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서점이 아니라 경영방식, 매장규모,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서점이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책을 정밀하게 분류해 진열하고, 클래식 음악으로 흐르는 공간을 조성했으며, 여기서 발표한 베스트셀러가 신문사에서 선정한 베스트셀러 목록의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저자는 이것을 문헌으로 확인하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종로서적이 당시 사회와 문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곳은 단지 책을 사는 곳이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는 약속장소였으며 자신의 고급 취향을 과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내 친구가 내 아내의 친구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된 일터이기도 했으니 내게 종로서적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역사박물관에선가 당시 책 포장지를 전시한 것을 본 일이 있다. 내 학창시절의 기억을 안고 있는 곳이자 친구 내외에겐 젊음을 바쳐 일한 일터인 그곳이 없어져 못내 아쉽다. 누군가 종로서적을 재건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그것이 종로서적일 수는 없는 일이고.
교보문고를 처음 찾았을 때 받았던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이전 대형서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압도적인 규모와 쾌적한 환경, 무엇보다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서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책을 찾는데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물론 다른 대형서점에서도 직원에게 물어볼 수는 있었지만 그건 직원이 친절을 베푸는 것이지 직원의 전담업무는 아니었다. 저자 역시 그 점을 교보문고의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특정 주제를 다른 책을 기획전시하는 큐레이션을 실시한 것도 교보문고가 처음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작업이 저자가 설명한 대로 그렇게 노력이 들어가는 일인 줄은 몰랐다.
뭐니 뭐니 해도 서점의 혁명은 온라인서점이 아닌가 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기존 대형서점이 인터넷서점을 연 것도 같은 1997년이었고 전문적인 온라인서점도 1999년 같은 해 영업을 시작했다. 나는 종로서적은 너무 복잡하고 교보문고는 너무 커서 한동안 영풍문고를 다녔다. 그러다가 영풍문고에서 인터넷서점을 시작하면서 자연히 고객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Yes24가 문을 열자 그리로 옮겨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다. 따지고 보니 20년 넘은 고객이 되었다. 저자는 온라인서점의 폐해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서점에 대한 ‘역사서’를 쓸 정도이니 서점에 가진 애정이 남다를 것이고, 그런 마음이 담긴 것이 아닌가 한다. 온라인서점이 생긴 어간에 절반 가까운 서점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도서정가제가 붕괴된 것을 큰 이유로 지적하고 있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 지나치다 싶기는 하지만 배송 시스템이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서지사항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검색과 ‘미리읽기’ 기능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된다.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되는 책을 샀다가 낭패를 당한 일이 여러 번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책을 혹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그러다 보니 책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미리읽기’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면 내용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필요할 때 바로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서점에 비할 바는 아니다.
온라인서점이 거의 동시에 생긴 것은 그 시점에 수요가 무르익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점에 애정을 가진 저자가 그의 폐해를 지적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그 시점에 수요가 무르익었던 것이었다면 온라인서점의 출현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예전에 다니던 서점의 분위기가 가끔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편의와 효율을 상쇄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지역서점이 다시 활성화되기는 어렵지 않겠나.
아마 저자가 독립서점을 한 장으로 다룬 것은 그런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독립서점은 독립출판물(국제표준도서번호 ISBN이 부여되지 않은 책)을 다루고, 북 큐레이션을 하고, 이야기가 깃든 공간이라야 한다. 대형서점에서도 큐레이션을 하지만 거기에 이야기를 덧입힌다면 비록 소수이기는 하겠지만 수요는 있을 수 있겠다. 거기에 상업적 목적이 아닌 책까지 다룬다면 차별화된 공간이 되지 않겠나. 최근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구체적인 정보는 얻지 못했다. 그런 서점을 소개했더라면 좋았겠다.
귀국하기 전에 우연히 저자가 쓴 <한국기독교 흑역사>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읽고 싶었는데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아서 한참을 벼르다 읽었다. 읽으면서 새롭게 알아간 것도 있지만 그동안 막연하게 가져왔던 한국기독교의 치부를 구체적으로 선명하게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읽기를 권하고 있다. 저자가 열거한 사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고, 설령 알았다고 해도 그게 그런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의 치열한 문제의식에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자의 서술이 내 신앙을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방향을 바꾸게 만들었다. 저자에게 큰 신세를 졌다.
저자가 누군지 알려지지 않아 몹시 궁금했다. 후속 저작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가 순천에서 향토사를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점을 운영한다는 소식도 듣고. 그러다 이 책이 발간된 걸 알게 되었다. 리뷰 쓸 사람 신청을 받는다는 말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신청하고 책을 받았다. 값을 치르고 읽었어야 할 책인데.
아, 이 책은 교양서가 아니라 역사서로 분류해야 할 책이다. 누군가 이어서 연구할 분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