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법 제정을 추동한 역작
레이첼 카슨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2011년 11월 30일
평생 건설업에 몸을 담았다. 건설업 중에서도 사업의 첫 단추를 꿰는 설계를 하다 보니 계획 단계에서 부딪치는 저항을 온 몸으로 받아야 했다. 사업으로 인한 이해관계 때문에 받는 저항도 만만치 않았지만 문제는 환경단체의 저항이었다. 그들은 일반 민원인에 비해 집요하고 조직적이었다. 그런 태도만큼 근거와 논리를 갖추었으면 다투어보기라도 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막무가내인 환경단체에 대해 극히 부정적이다.
어느 사업이든 설계 단계에 그 사업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를 예측하고 그것을 회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반드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정량적으로 이루어진다. 논리와 숫자로 표시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논리와 숫자로 이루어진 환경론자의 주장이 항상 반갑다.
최근에 레이첼 카슨을 알게 되었다. 그는 DDT의 피해를 논리와 숫자로 풀어내 DDT 사용금지를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그의 사후 미국 연방정부는 지구의 날을 제정하고 의회는 인간이 저지르는 만행을 완충시킬 환경법을 통과시켰다. 카슨은 1962년 <침묵의 봄>을 발표할 때까지 남성의 영역이었던 당시 미국 과학계에서 여성이었고, 탁월한 업적을 거둔 적이 없던 아웃사이더였으며, 그가 연구한 생물학은 별로 인정받지 못했고, 특정 학회에 가입하지도 특정 기관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도 않았다. 지금이야 살충제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살충제의 오용으로 우리 자신이 서서히 독극물에 중독되고 있다는 카슨의 주장은 혁명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 당시 카슨은 대수롭지 않은 문제를 제기하는 히스테릭한 여성, 한 마디로 통제 불능이며 여성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도를 넘어선 독신녀에 불과했다. 과학계가 과학에 무지할 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범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자인 카슨은 어느 날부터 닭들이 이상한 질병에 걸리고 소 떼와 양 떼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을 보게 되었다. 농부들의 가족도 앓아누웠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곳곳에서 보고되었으며, 어른들 뿐만 아니라 잘 놀던 어린아이들이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다가 몇 시간 만에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저자는 이를 추적해 당시까지 환상의 살충제로 알려진 DDT가 지닌 치명적인 문제를 밝혀낸다. 저자는 이 책에서 DDT로 대표되는 살충제를 비롯해 제초제와 다른 화학약품이 자연은 물론 인체에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입증하고 있다.
“1959년 미시간 남동부 상공에 염화탄화수소계 화합물 중 가장 위험한 알드린이 살포되었다. 미시간 농무부가 왜콩풍뎅이 방제를 위해 실시한 것이다. 살충제에 중독된 왜콩풍뎅이 애벌레를 먹이로 삼은 지빠귀, 찌르레기, 들종다리, 구관조, 꿩 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개똥지빠귀는 거의 절멸했는데, 살충제를 먹고 죽은 지렁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살충제 뿌리고 며칠 뒤 비가 내렸는데 웅덩이에 고인 빗물을 마시거나 그 물로 목욕한 새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살아남은 새들은 새끼를 낳지 못했다. 살충제가 뿌려진 지역에 노출된 웅덩이에 들어있던 새알은 부화하지 못했다. 얼룩다람쥐, 사행뒤지, 토끼의 사체가 발견되었고 흔하게 보였던 여우다람쥐도 자취를 감췄다. 이 지역 농장에서 키우던 고양이의 90%가 죽었다. 살충제에 오염된 풀을 먹은 양들도 죽었다.”
저자는 제초제는 오직 식물에게만 독성이 있고 동물에게는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데 실은 식물 뿐 아니라 동물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어떤 것은 일반적인 독극물처럼 작용하고, 어떤 것은 체내 물질대사에 강력한 자극을 주어 체온을 급상승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혹은 다른 물질과 만나 악성종양을 만들며 유전물질에 영향을 미쳐 돌연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니 사람이라고 해서 그런 피해에서 비켜서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DDT는 소화기관이나 폐를 통해 천천히 흡수되며, 일단 몸에 들어가면 대부분 부신, 고환, 갑상선 등 지방이 풍부한 신체 장기에 축적된다. 이는 극소량이라 해도 체내에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 인체의 정상적인 화학작용에서는 극미량의 차이라 해도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요오드 1만분의 2그램 차이가 건강과 질병을 가름한다. 살충제는 단지 독성만 띄고 있는 게 아니다. 생물 몸속에 침투해 치명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변화시킨다. 유해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주는 효소를 파괴하고, 에너지를 얻는 산화과정을 방해하며, 각종 기관의 정상적인 기능을 억제해 불치병을 일으키는 등 점진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유도한다.”
더 큰 문제는 살충제에 노출된 일이 없는 일반인의 조직에서도 상당량의 성분이 검출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음식 때문인데, 당시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들은 DDT가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평범한 가정의 음식에서 이런 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것은 육류와 동물성 지방을 포함한 음식이었는데, 바로 이런 화학물질이 지용성(脂溶性)이기 때문이다. 과일이나 채소의 잔류 농약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겉잎을 떼어내거나 껍질을 칼로 벗겨내야 한다. 씻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조리 과정에서 농약이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런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DDT에 노출된 적이 없는 에스키모를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를 소개한다.
“에스키모 몇 명에게서 인체조직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 미량의 DDT가 검출되었다. 이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마을을 떠나 앵커리지 미국 공중위생국에 머무는 동안 병원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에 다른 도시 수준의 DDT가 포함되어 있었다. 문명 속에 잠시 머문 것만으로도 위험물질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어떤 생물도 오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화학물질은 멀리 떨어진 산 속 호수에 사는 물고기, 땅 속에 사는 지렁이, 새가 낳은 알과 인간에게서 발견되며, 연령에 상관없이 대다수 사람 몸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유에서는 물로 태아의 조직에서도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런 피해는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먹이사슬을 따라갈수록 화학성분이 축적되어 농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각다귀를 없애기 위해 호수에 0.02ppm의 DDT를 살포했는데 수질오염으로 죽은 농병아리 사체에서 검출된 DDT 농도는 1600ppm에 달했다. 조사 결과 가장 작은 유기체에 함유된 화학물질이 포식자에게 잡혀 먹히는 과정에서 독극물이 점차 축적된 것이다. 플랑크톤엔 5ppm, 물풀을 먹는 고기에선 40-300ppm, 육식성 어류인 메기에서는 2500ppm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 성분은 몇 달 심지어 몇 년까지도 독성이 지속된다. DDT 살포를 중단하고 23개월 후 측정한 결과 플랑크톤에서 5.3ppm이 검출되었다. 그동안 플랑크톤이 계속 새로 생겨나고 소멸되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살충제나 제초제 저면 금지만이 대답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를 대신하거나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며, 실제로 찾을 수 있다고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오하이오에서는 1953년부터 1959년까지 느릅나무병을 방제하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결과를 분석한 결과 오히려 면화깍지진디가 더욱 만연한 것을 확인했다. 질병이 전파되지 않은 유일한 지역은 병에 걸린 나무를 베어내 응급처방을 한 곳이었다. 살충제에 의존한 지역에서는 병을 통제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교외 지역에서 도시 지역보다 병이 퍼지는 속도가 느렸다. 살충제가 천적마저 없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는 병에 걸린 나무들은 신속히 제거했다. 제거한 나무들은 봄이 되기 전에 모두 태웠다. 장작용으로 쌓아놓은 느릅나무 목재에 병균을 옮기는 딱정벌레들이 알을 까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뉴욕에서는 느릅나무병 발생률이 0.2%로 떨어졌다. 뉴욕의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이 느릅나무병을 관리하는 게 훨씬 경제적인 것으로 판단했다. 이 방제법이 가져다주는 이익에 비해 실질 비용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사례는 살충제가 오히려 병충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천적을 없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례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천적을 이용해 해충을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 저자 역시 그에 동의하지만 아쉽게도 책에서 그런 사례를 찾을 수는 없고 아래 인용한 것이 전부이다. 이 주제를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저자가 이 책을 발표하고 두 해 뒤인 1964년에 비교적 젊은 나이인 56세로 세상을 떠나 그런 사례를 찾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곤충 방제작업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첫 번째는 정말 효과적인 곤충 방제는 인간이 아닌 자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자연계에는 고유한 환경 저항이 존재해서 특정 종마다 개체수가 일정하고 조절되는데, 이는 지상에 첫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 계속 그래왔다. 곤충학자 로버트 메트걸프는 ‘이 세상이 곤충으로 뒤덮이지 않게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곤충들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학약품은 인간의 친구든 적이든 구분하지 않고 모든 곤충을 없애버린다. 두 번째는 환경 저항이 약해지면 종족을 재생산하려는 폭발적인 힘이 발휘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생명체는 우리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놀라운 번식능력을 자랑한다. 문제는 우리가 천적 구실을 하는 동물을 모두 죽인 후에야 비로소 그 동물이 맡고 있던 조절 기능을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환경오염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규모 농지에 단일 작물을 재배하게 된 것이 병충해의 피해를 증폭시킨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특정 곤충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닭이나 돼지를 폐사하게 만드는 질병들이 모두 다양성을 배제하고 품종을 단일화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은 일이 있다. 이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되겠다. 저자는 “자연이 인간에게 다양성을 선물했는데 인간은 다양성을 없애 자연의 견제와 균형의 능력을 쓰러뜨리려 한다”며 매우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하고 있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의 통찰은 놀랍다. 자연과학 책이 아니라 철학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하긴 저자는 문학에 재능이 있어 영문학을 전공할 뻔 했다지 않는가.
“자연의 균형이 현재 모습 그대로 유지되는 불변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균형이란 유동적이고 계속 변화하며 조절과 조정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인간 역시 자연이 이루는 균형의 일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