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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Dec 07. 2022

글쓰기 기본기

이강룡

창비

2016년 11월 25일


평생 보고서 쓰는 게 일이었다. 글 쓰는 일이 질릴 법 했지만 다행히 잘 적응하고 살았다. 현직을 떠났으니 그 굴레에서 벗어나겠다고 생각할 만도 한데, 오히려 일하면서 들인 습관이 무료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벼운 치매 증세를 보이셨다. 치매라는 게 예방이 되는 게 아니라고는 하더라. 그렇기는 해도 자꾸 머리를 쓰면 치매 걸릴 확률을 조금은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몇 년 전부터 매일 글을 써오고 있다. 형편이 안 되면 메모에 지나지 않는 글이라도 쓰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을까 하는데 관심이 쏠리고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올 초에 한 해 읽을 책 목록을 만들었다. 목록을 정하다가 제목에 끌려 살펴보니 저자가 이름난 글쓰기 강사였고,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글이 실려 있다고 했다. 연초에 목록에 올려놓고 이제야 읽었다.


제목에 글 쓰는 데 고려해야 할 점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참에 그동안 써온 글을 돌아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동안 글을 써오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나름대로 자리 잡은 내 글쓰기 방법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글 잘 쓰는 요령이라는 게 별 게 없구나, 그저 꾸준히 쓰면서 고쳐나가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없겠구나 싶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동안 놓치고 있거나 가벼이 여긴 것들 중에 중요한 것을 확인하는 소득이 있었다.


저자는 글은 좋은 내용이 담기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는 반성할 게 많겠다.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감에 매어있다 보니 억지로라도 글감을 찾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는 글이 대다수였다. 모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글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글 쓰는 일을 중단할 수도 없고, 쓰다 보면 차차 나아지기도 할 것이니 이 점을 늘 기억하도록 애써야겠다.


저자는 글을 구체적으로 쓰기를 권한다. 글을 구체적으로 쓰려면 관찰력이 좋아야 하고, 관찰력이 향상되면 표현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추측해서 쓰지 말고 쓸 내용을 확인하는 버릇을 들이라고 권한다. 추측해서 쓰다보면 글에 애매해질 뿐 아니라 힘이 붙지를 않는단다. 평생 ‘정확한 글쓰기’가 생명인 보고서를 쓰다 보니 그 점은 나름 잘 자리 잡은 것 같다. 글을 쓰기 전에는 머릿속으로 구상하는데 시간을 많이 들이지만, 쓰기 시작하면 내용에 들어가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공을 들이는 편이다. 가급적 ‘2차 인용’은 피한다. 누군가 필요한 내용을 인용해놓았으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원 출처를 찾아 내용을 확인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나는 아주 사적인 내용이 아니면 쓰는 글을 모두 페이스북에 올려놓는다. 그 중에 기록으로 남길만한 글은 브런치에 올려놓고. 자연히 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 역시 글쓰기 전에 독자를 뚜렷이 정해놓으라고 권한다. 그래야 독자에 따라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이 달라지고 용어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표를 공격하는데 산탄보다는 집중사격이 효과적인 건 불문가지의 일이고. 저자는 이어서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가 자기가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라고 강조한다. 예컨대 ‘친구 공개’ 글이나 폐쇄적인 그룹에 글을 올린다고 해도 자기 의사에 관계없이 공개될 수 있다고 가정하라는 것이다. 하긴 특정한 사람만 읽도록 쓴 글이 공개되어 곤란을 겪은 사람이 어디 하나둘인가. 저자는 그럴 때 글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한정짓고 내용을 거기에 맞춰서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공개되더라도 오해를 일으킬 여지를 없애라고 덧붙인다.


몇 년 전부터 읽은 책은 가급적 리뷰로 남기고 있다. 치매 방지용 글쓰기의 일환이기도 하고 책을 제대로 기억하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럴 때 줄거리를 소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사실 리뷰를 쓸 때마다 고민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그저 내 감상만을 올려놓을 경우 독자가 책을 읽기 전에는 리뷰 내용을 이해하거나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독자가 인내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리뷰의 분량도 무시할 수 없어 가급적 5천 자 이내로 쓰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8천 자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리뷰를 쓰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젊은이들이 대충이라도 책 내용을 알아두라는 마음으로 쓴다. 그러다 관심이 끌리면 책을 읽어 보고. 나도 그때는 사는데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건 흉이 아니다.


책 내용만 요약하면 요약문이지 리뷰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리뷰, 혹은 감상문이 의미를 가지려면 ‘1) 책 내용에 들어 있는 여러 장면, 2) 책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저자의 시대적 배경, 3) 같은 저자의 다른 책, 4) 다른 저자의 같은 책, 5)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거나 그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나도 그렇게 노력하고는 있었는데 이처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덕분에 글을 쓰는 기준을 하나 더 얻었다.


나는 글을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쓰고, 고치는데 거의 같은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도 하는데, 고친다는 것보다는 덜어낸다는 게 사실에 더 가깝다. 써놓고 나서는 없어도 문맥이 통하는데 지장이 없으면 가차 없이 덜어낸다. 덜어내고, 덜어내고, 또 덜어낸다. 그래서 온라인에 올린 내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올리기 전에도 덜어내지만, 올리고 나서도 보면 여전히 덜어낼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퇴고의 기준을 옮긴다.


1) 글이 주제를 벗어나지는 않았는가? 

2) 빠뜨린 내용은 없는가?

3) 군더더기는 없는가?

4) 표현은 구체적인가?

5) 문장은 어법에 맞는가?

6)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올바른가?

7) 인용방법은 적절한가?

8) 문장부호는 제대로 달았는가?

9) 소리 내어 읽어보아도 자연스러운가?


그러고 보니 내 나름의 퇴고 방법 중 중요한 것 하나를 빼먹었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지적한 바로 그것이다. 나는 글을 써놓고는 늘 소리 내어 읽어본다. 글이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으면 그렇게 될 때까지 고친다. 글을 쓰다 보니 읽어서 자연스러운 글이 잘 된 글이고 어법에도 맞는 글이더라. 읽는 게 부자연스러우면 그 글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더라는 말이다.


이 책이 여느 책들과 달리 도서관 청소년실에 비치되어 있었다. 아마 대학입시 논술에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는 도서를 분류하는 사서가 성인들은 글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닌가 모르겠다. 그게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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