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다른 문화를 만나고 나면 생각과 감성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외국을 여행할 때면 가능한 그 나라 문화를 많이 누려보려고 한다. 예술부터 시작해 뒷골목 정서까지. 십 년 넘게 외국에서 살았으니 그곳 문화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사우디 문화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이질적이어서 돌아올 때까지 적응을 하지 못했다.
코로나 지나면서 눌렸던 욕구가 보복소비로 이어졌다는 보도도 있던데, 그래서인지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 유난히 그런 곳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한 해가 넘도록 그러고 다니는데도 아직 그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아침저녁으로 도서관 오가는 길에 박물관이며 미술관이 즐비하다. 큰 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공연도 널렸고. 음악이라면 나름 이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오가며 열심히 들여다보니 예전에는 미술품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고작 두세 가지를 벗어나지 못하던 것이 이제는 이런저런 느낌을 이야기할 정도까지는 되었다. 감동적인 작품 앞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 놓고 있기도 하고, 같은 작품을 보러 여러 번 찾는 일도 생겼다.
‘어쩌다 아티스트’께서 불러주셔서 전시회에 다녀왔다.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공개를 했던 터라 낯선 작품이 오히려 드물었다. 이젠 ‘자신만의 색깔’이 보인다. 몇몇 작품은 소개 없이 봐도 그의 작품인지 알아보겠다. 변화도 읽히고.
나는 화폭을 가득 채운 그림보다는 여백이 많은 그림이 편안하다. 빈틈없이 채워진 그림은 운신할 공간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그림을 모르면서도 그의 그림에 자꾸 눈길이 갔던 건 여백을 독특하게 담아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것을 동양화적 감성이라고 했다. 올해 작품 중에 그 여백을 밖으로 끌어내고 중앙을 치밀하게 채워 넣은 그림이 눈에 띄었다. 여백의 배치만 바뀌었을 뿐인데 느낌은 완연히 다르다. 여백은 있는데 중앙이 치밀하니 동양화 느낌이 덜하다. 아서라, 내가 뭘 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