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12.11 (일)

by 박인식

권위가 실종된 세상이 되었다. 존경할 대상을 찾는 것도 그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런 사회에서 예외적이라 할 만한 그를 만난 것은 육칠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까지 나는 그저 내 나이 남자들이 그러하듯 완고하고 가부장적이었으며, 힘의 논리에 길들여있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고방식에서는 소수자 차별이 오히려 당연했다.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그의 기고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그들의 건강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발생한 자살 때문에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만든데 대한 그의 궁금증은 연구로 이어졌고, 이후 그의 연구는 소방공무원ㆍ성소수자ㆍ세월호 생존학생과 천안함 생존장병으로 대상이 확대되었다.


몇 년을 벼르다 오늘 찾은 그의 강연에서 그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천안함 생존장병은 불과 두세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내년부터 그가 시작하는 ‘지체장애인ㆍ발달장애인ㆍ발달장애인의 부모가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과 건강에 대한 20년 추적 관찰 연구’는 두 주에 한 번 꼴로 올라오는 그들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역시 놀랍다. 20년 추적 관찰이라니.


그의 저서가 있어야 강연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종이 책은 아직 가져오지 않은 이삿짐에 들어있고 전자책을 보여주자고 랩탑을 들고 갈 수도 없는 일이어서 망설이다가 강연을 주최한 출판사 대표께 어려운 부탁을 드렸다. 그의 강의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를 만나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만나 이렇게 이야기했다.


“2016년 이후로 교수님께서 공개한 모든 글을 읽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내 얼굴을 한참 쳐다봤다. 그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을 정리하기 위해 한동안 침묵을 이어가는 것처럼. 그러고는 고맙다고 했다.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강연에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참석자 하나가 그의 글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자 오해를 바로잡으면서 자기는 자기가 쓴 글이나 온라인에 공유한 글은 모두 기억한다고 했다. 무서우리만치 자신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글 곳곳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런 그가 답변 끝에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추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그다운 말이었다.


아, 그의 글을 모두 읽은 건 아니었다. 올 초에 트라우마 생존자의 이야기인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가 출간된 걸 강연을 듣고서야 알았다. 주문하니 몇 시간 후에 도착한단다. 그야말로 총알 배송이다. 받아볼 때마다 책을 그렇게 빨리 보내려면 여러 사람이 고단해야 하는데, 과연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것 또한 그의 글을 읽었기 때문에 가지게 된 생각이 아닐까.


그의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그리고 번역서인 <장애의 역사>는 내 독서 편력에 획을 긋는 책일 뿐 아니라 내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은 책이기도 하다. 시대의 필요를 읽는데 요구되는 통찰을 주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자식 또래의 젊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건강연구자 김승섭 교수는 권위와 존경의 대상을 찾기 어려운 사회에서 망설임 없이 존경하는 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다. 그의 치열한 연구에 경의와 기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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