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청와대 주변을 맴돌았다. 명륜동에서 태어났고, 결혼해서 청와대 뒷길로 이어진 정릉에서 살다가 청와대가 지척인 홍은동으로 옮겨 삼십 년 넘는 세월을 살았다. 출퇴근길에 질러가느라 그 앞을 수없이 다녀봤지만 그 안쪽 세상이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남들 다 하는 것이어서 한 번 들어가볼까 싶기는 했다. 얼마 전 지나다 보니 경로우대라 현장에서 줄만 서면 들어간다는 게 아닌가. 세상에, 나이가 벼슬이로다.
안충기 기자의 <처음 만나는 청와대>를 끼고 경내에 있는 나무부터 찾았다. 녹지원에 있는 반송은 명불허전이었으나 나무 밑에 앉아 카메라만 들이대면 작품이 된다는 회화나무는 헐벗어서 그런지 어디 있는지 찾느라 한참을 휘둘러봐야 했다. 잎이 무성하던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청와대 터줏대감인 칠백 년 묵은 주목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내원에게 물어도 모른다. 그렇게 몇 번을 물어 어디 있는지 찾았다. 주목이라는 건 모르고 칠백 년 넘은 나무라니 알아듣는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작다고 한 마디 건넨다. 찾아가보니 내려오면서 지나쳤더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볼품없더란 말이다. 사진이 요물이지.
상춘재도 그렇고 관저도 나름 봐줄만 하더라. 목재가 주는 질감이 편안했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본관으로 내려오니 영 못마땅한 것 투성이었다. 콘크리트로 서까래며 처마를 만들어 놓은 건 예전에 광화문 하나로 족한 게 아닐까.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 근무하는 곳인데 본관 어디를 돌아봐도 무게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격조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고. 분명 싸구려를 들여놓은 건 아닐 텐데 왜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도 고상해 보이는 것도 찾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난다 긴다 하던 사람들이 만들었을 거 아닌가. 에이...
대통령 초상도 그렇다. 안충기 기자 글에 따르면 대통령 초상은 본인이 선택했다는데, 옛날 오일장 시장에 내걸린 초상화와 딱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게 김영삼 대통령 초상화였는데, 가장 자연스럽고 미적으로도 단연 두드러져 보인다. 안충기 기자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 초상화 그린 이원희 전 계명대 미대학장이 박근혜대통령도 그렸단다. 그래도 그건 영 별로다. 김 대통령은 화가가 편하게 그리도록 구수하게 이야기를 건넸고, 박 대통령은 탄핵이 결정되어 사진만 보고 그렸다니 그럴 법도 하다.
오늘은 건물과 나무를 보았고, 문화재와 그림은 보지 못했다. 아, 인왕실에 걸린 <통영항>은 봤다. 그림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그건 통과. 문화재 보러 한 번 더 와야 할까보다.
오늘 앞서 말한 안충기 기자의 <처음 만나는 청와대> 북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책을 읽었는데 책 들고 청와대를 한 번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던 건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가보지 못하고 북콘서트에 가게 되나 했다. 오늘 아침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반납해야 할 책도 있고, 대출 예약해놓은 책이 두 권이나 들어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훠이훠이 정독도서관에 도착하니, 글쎄 정기 휴관일이 아닌가. 덕분에 예정에 없던 청와대를 둘러보고 이따 있을 북콘서트에서 저자에게 생색을 내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