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아 한글로 글을 쓰다가 빨간 밑줄이 나오는 걸 견디지 못한다는 글을 읽고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사전에 관련한 학술대회 지정토론자로 나온 기자가 자신의 맞춤법 강박을 설명하는 글이었다. 나도 그 기자 못지않게 빨간 밑줄을 견디지 못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강박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일상적으로 쓰는 말까지 빨간 밑줄이 뜨는 건 편치가 않다.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단어를 써야할 상황이 되면 몹시 못마땅하기까지 하다.
며칠 전 박일환 선생께서 올려놓으신 한겨레말글연구소 주최 학술발표회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국가사전과 언어민주주의’. 마치 대정부투쟁 구호 같았다. 한겨레답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도 슬며시 궁금해졌다. 박 선생께서 꾸준히 올리는 국어사전의 문제점을 공감하며 읽었던 터라 어떤 내용이 논의되는지 들어볼 생각도 들고, 그 참에 선생도 뵙고 그럴까 싶었다.
아침부터 곧 내릴 것 같던 눈이 오후에 들어서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렸다. 잠깐 사이에 계단에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십 년 넘게 눈 못보고 살아서 그런지 눈만 보면 반갑다. 반가운 눈도 보고, 박 선생 뵙고 인사도 나누고, 발표장에 미리 와 계시던 출판사 뿌리와이파리 정종주 대표도 뵈었다. 두 분 모두 초면인데 늘 만나던 친구처럼 반갑게 맞아주셨다.
사전 편찬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학술 발표회에 사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쓴 소리를 쏟아내는 박 선생께 발표를 부탁했단다. 그 정도면 속 좁은 사람들은 아닌데, 발표 내용을 들어보니 자타 공히 인정하는 문제점들도 고쳐지는 건 요원해 보였다. 학자에 따라 국어사전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국가주도의 국어사전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민간주도의 국어사전이 다양하게 발간되어야 하는데, 무료 검색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그런 기대를 걸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로 보였다. 박 선생께서 국어사전이 너무 많은 단어를 담으려다 보니 오히려 내용이 부실해졌다고 지적한 것이 관계자들에게는 뼈아프게 들렸다 싶기도 하고. 끝까지 참석할 수 있었으면 몇 가지 질문할 것도 있겠더라만, 선약이 있어서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총평; 매우 유익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