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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간은 모두 끝나고 버저 울릴 때 일어난 파울로 자유투 두 개만 남겨놓았다. 둘 다 들어가면 이겨서 결승 토너먼트에 올라가고, 하나만 들어가면 연장, 둘 다 실패하면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할 상황이었다.
자유투 던질 선수는 그날 득점의 반을 넣은 주전 슈터. 응원 갔던 친구들은 이미 승리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처음 던진 슛이 조금 짧았던지 림을 맞고 튀어나왔다. 괜찮아. 연장에서 끝내면 되지. 두 번째 슛이 림을 몇 번 튀기다 밖으로 떨어졌다. 아... 내가 응원 와서 졌구나. 괜히 왔다 싶어 오히려 미안했다. 사실 응원보다는 무학여고 체육관이라는 것에 더 끌렸거든.
꼭 50년 전 3월 어느 날, 그해 첫 번째 고교농구대회였다. 무학여고에서 왕십리 로터리까지 내려오는데 초봄이었을 텐데도 유독 날씨가 더웠다. 날씨가 더운 게 아니라 덥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조별리그 결과가 경우의 수와 맞아떨어져 결승 토너먼트에 올랐고, 첫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간혹 페이스북에 그 친구 소식이 올라왔다. 언젠가 마주치겠지, 마주 치면 그때를 기억하는지 물어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만났다. 묻고 싶기는 한데 그래도 괜찮을지 싶어 망설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저녁 식사 끝나고 커피 한 잔 하러 자리를 옮겼다. 떨어져 앉았는데 굳이 물어보랴. 그런데 그 친구가 한 잔 더 하자고 앞장섰다. 옆자리에 앉았다. 한창 옛날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자기가 운동하며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첫 머리에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부터 그의 회고.
마침 수업이 끝난 무학여고 학생들이 체육관으로 몰려 들어왔다. 경기하면서 여학생 특유의 앙칼진 소리를 들은 게 처음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성적이 좋았는데, 그런 소리를 듣고 나니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경기 승패가 내 손에 걸리게 되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유니폼도 갈아입지 않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정신없이 뛰었다. 왕십리 로터리쯤 내려갔을 때 숨이 턱에까지 찬 후배들이 쫓아와 코치선생께서 데려오라고 했다며 잡아끌었다.
예선전이어서 학교에서 단체응원은 오지 않고 몇몇 친구들만 응원을 왔다. 나는 지금껏 그 경기를 기억하는 친구를 보지 못했다. 오늘 동창 송년모임에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그 경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도 순간순간을 사진 찍듯. 아내가 무학여고를 나왔다고 하니 그러면 그 경기를 봤더냐고 물었다. 못 봤을 걸... 못 봤을까? 아, 물어봐야겠네.
헤어지기 전 둘이 사진 한 장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