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12.26 (월)

by 박인식

요즘은 말 한마디 글 한 줄 쓰기가 조심스럽다. 예전에 일상적으로 쓰던 말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고 소수자 혐오적인 표현이 하나 둘이 아니다. 공인이었던 일도 없고 이젠 물러나 백수 신세이다 보니 내가 말하는 것 가지고 시비 걸 사람이 없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저곳에 글을 올리니 혹시라도 누군가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 조심하고 있다. 원치 않게 시비에 휘말리는 것도 피하고 싶고.


하지만 그런 소극적인 생각에서 조심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나름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은 곳에서 고민해야 할 일이 생겼다.


요즘 좋은 기회를 만나서 책을 하나 번역하고 있는데, 거기서 인칭 대명사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 때문에 며칠 망설였다.


몇 년 전부터 의도적으로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방송에서 왜 남자 선생은 ‘선생’이고 여자 선생은 ‘여선생’이어야 하느냐고 지적한 일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그녀’라는 말이다. 지금은 그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모든 글에서 사람을 칭하는 삼인칭 단수를 ‘그’로 통일해서 쓰고 있다.


번역을 하면서도 여전히 he나 she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그’로 썼다. 그렇게 쓰니 책을 잘 따라오는 사람은 별 어려움이 없겠는데,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하고 읽다보면 그게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하게 생겼다. 몹시 불친절한 글이 되었더라는 말이지.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녀’라는 말을 쓰고는 있는데, 영 마음이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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