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늘어지고 망가진 게 하나둘이 아니다. 귀국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해야 할 것을 건너뛰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처음에는 곧 돌아갈 생각이어서 짧은 일탈로 여겼고, 돌아가기 막연해진 지금은 그 일탈이 일상이 되었다. 동네 뒷산을 오르고 개천을 따라 걸으며 이 좋은 걸 그동안 왜 누리지 못하고 살았는지 후회도 하고 뻔질나게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불과 몇 달이 가지 않아 서울을 떠나기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더 이상 긴장할 일이 없어서 편안했고, 책 읽고 글 쓰고 이것저것 구경 다니는 게 더없이 즐거웠으며, 가끔씩 친구들 만나 실없는 소리 할 수 있어서 마음이 넉넉했다. 그러는 사이 몸이 둔해지고 계단 몇 층 오르지 않아 가쁜 숨을 몰아쉴 정도가 되었다. 눕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지던 건 옛 모습이 된지 오래되었다. 저녁나절에 커피 한 잔 마셨다고 밤새 뒤척이는 일도 잦아졌다.
며칠 전, 지하철 계단 오르는 게 힘겹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동네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다. 이제 사흘 째. 일단 운동량을 예전 절반으로 줄여 시작했다. 어제 오늘 팔이 잘 들리지 않아 제대로 운동하겠나 싶었는데, 하고 나니 오히려 풀어졌다.
오랜 만에 회사에 갔다. 회사 식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뭔가 역할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바쁜 연말이나 넘기고 몇 곳을 다녀와야 하겠다. 귀국해 사임하려니 비상근으로 좀 도와달라고 했다. 도와주기는 뭘. 배려해주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마음 써줘서 고마웠다. 그래도 미운 털 박힌 선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제로 입사 40년이 되었다. 내가 봐도 천연기념물 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