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건강이 최고라더라. 건강해서 뭘 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폐 끼치지 말고 살자는 것이지. 지난번 고등학교 친구들 만났을 때 날 풀리면 모여서 한 번 걷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추위가 어지간히 가신 것 같아 오늘 모이기로 했는데, 추위가 가신 게 아니라 날씨만으로는 봄이 성큼 왔더라.
지난 해 봄에 만났을 때만해도 펄펄 날던 친구가 암 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몹시 놀랐다. 나도 그랬고 다른 친구들도 꽤나 놀랐을 것이다. 다행히 오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이가 있는데 거뜬하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멀쩡히 잘 걷고 식사도 함께 했다. 친구들 얼굴에 안심한 빛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안부 인사 몇 마디 나눈 것 말고는 다들 그 친구 수술한 이야기는 피하는 듯싶었다. 그냥 좋은 이야기만 하자는 말이었겠지.
앞으로 십 년은 이렇게 모여서 얼굴도 보고 산으로 들로 걷기도 하잔다.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십 년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였을까?
걸은 건 두 시간 남짓한데 밥 먹고 차 마시면서 수다 떤 건 세 시간도 넘었나. 양기가 입으로 올라온다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 모양이다. 입만 살았다는 말이지.
숙제 받아놓고 끝내지 못하면 다리 뻗고 자지 못하는 성격이 다시 도졌다. 시간이 아직 넉넉한데도 하루 열두 시간도 넘게 번역에 매달리고 있다. 아직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반갑고 내용도 재미있는데, 그러다 보니 백수가 놀지를 못하고 있다. 친구들이 산보하고 밥이라도 먹자는 말에 오늘 하루는 제끼기로 했다.
수술 받았다는 녀석이 언제나처럼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백발과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