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01.26 (목)

by 박인식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선생께서 쓰신 ‘내가 원하는 나라’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나는 요즘 백범 선생께서 한 없이 누리고 싶어 하셨던 높은 문화의 힘을 아주 풍성하게 누리고 있다. 조금만 걸으면 고궁에 박물관에 미술관에 도서관, 그리고 청와대까지. 원 없이 누비고 다닌다. 그저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그러다 지루하면 홍제천도 따라 걷고 안산자락길도 걷는다.


십 수 년 눈을 못보고 살았으니 눈 오면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설렌다. 눈 오는 날 높은 문화의 힘을 누리려 사진 미술관에 다녀왔다. 전문가인 지인께서 가자고 하셔서 두말 않고 따라나섰다. 작년 이맘때는 평창동 김종용 미술관을 소개해주시더니 오늘은 삼청동에 있는 뮤지엄한미에서 열리는 ‘한국사진사’ 전시회를 소개해주셨다.


미술관에 가보면 전시하는 작품 못지않게 건물도 참 볼만하다. 주변경관과도 잘 어울리고, 보는 방향이나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연출된다. 특히 창문이 아주 볼만한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창문 아래 걸려있는 작품이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없는 것을 보면 전시할 때 그것까지도 감안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지난달에 평창동 갤러리에 갔을 때도 옆으로 길게 누인 창문 밖으로 함박눈이 내리더니, 오늘도 그랬다.


휴전 무렵에 찍은 사진들 앞에 잠시 서있었다. 한가득 꽃이 담긴 함지박을 이고 가는 아낙네 사진을 보면서 전쟁 중에도 꽃이 팔리는구나 싶어 흐뭇했고, 길바닥에 열 지어 누워있는 시신 사이를 다니며 누군가를 찾는 아이 업은 아낙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 사진은 차마 이곳에 올리지 못하겠다.


KakaoTalk_20230126_205905875_12.jpg
KakaoTalk_20230126_205905875_08.jpg
KakaoTalk_20230126_205905875_17.jpg
KakaoTalk_20230126_205905875_18.jpg
KakaoTalk_20230126_205905875_13.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3.01.21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