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연선
스리체어스
2022년 12월 12일
13년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떠날 때 실무진이었던 후배가 중역이 되었고 신입사원이었던 후배들은 중견직원이 되어 부서를 떠받치고 있었다. 모두들 업무 역량도 뛰어나고 자신감도 넘쳤다. 이런 친구들을 경쟁자로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며칠 전에는 제안서 제출을 준비하는 자리에 잠깐 합석했는데, 마감을 앞두고 밤샘 작업하는 건 여전해서 민망하고 아쉬웠다.
함께 저녁을 먹다가 근속년수가 화제에 올랐다. 우리 부서가 평균 근속연수가 다른 부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중견직원이 대부분 이십 년 가까이 근무한 조직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근무강도가 덜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데도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번아웃이라고 할 만한 증상을 겪은 경우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언급되는 번아웃 증상을 보면 그게 드러내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니, 여하간 그 정도로 심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둔감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요즘 직장인 사이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번아웃에 대해 세계보건기구는 2019년에 이를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정의했다. 저자는 번아웃은 “스트레스가 일정 수준과 기간을 벗어나 과도하게 누적되면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면서 “적절한 스트레스는 잘 대처하면 삶에 긴장감을 주고 활력이 되기도 하지만 번아웃은 잠깐 휴식을 가진다고 해서 그 이전의 상태로 쉽게 회복되지 않으며, 보통 심한 번아웃을 겪게 되면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최소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번아웃을 겪는 직원의 근무형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야근을 감수하거나 오랫동안 일하는 직원, 주도적으로 업무를 맡는 직원이나 높은 성과를 보인 직원에게서 나타난다. 업무 성과를 낸 직원들은 더 높아진 기대에 부응하고자 이전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한다. 고성과자는 다른 직원들에게 모범이 되기 때문에 다른 직원을 지원하고 도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많은 업무 더 어려운 업무를 맡게 된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늘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이 일을 더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그만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하고 그만한 대우를 받던가, 대우를 덜 받더라도 업무 부담을 덜던가. 그러니 그때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정당한 직장이 좋은 직장이었다. 보상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직하는 것이고.
저자는 번아웃의 문제는 그 영향이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고 설명한다. “번아웃에 빠진 직원은 조직에 대한 애정도가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직원과 갈등을 빚기 쉽고 조직 전체의 의지를 불식시키기도 쉽다. 이 경우 다른 직원에게 번아웃을 전염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 역시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있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그런 현상이 젊은 세대에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LG경영연구원에서 연구 위원으로 근무하면서 조직문화, 리더십, 평가보상, 채용과 같은 인사 조직 관련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얼마 전 이 책을 주제로 한 시간 가까이 인터뷰하는 방송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라서 듣고 흘렸을 수도 있었지만 저자가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인데다가 MZ세대를 번아웃 세대로 정의한 것을 듣고 호기심이 일었다.
우선 MZ세대가 정확하게 어느 세대를 뜻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검색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MZ세대는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해당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0대 초반~20대 중반에 해당하는 Z세대를 묶어 부르는 한국의 신조어이다. 다만 현재는 그 의미가 달라져 20대 젊은 사회인들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학술적인 배경에서 기인한 용어가 아니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해외에도 있는 개념이지만, 이를 합쳐서 MZ세대라 부르는 것은 오로지 대한민국뿐이다.”
사실 이 나이이의 젊은이들이 올릴 수 있는 성과는 그다지 많지가 않다. 경험한 바에 따르면 대체로 5년 정도 경력이 쌓여야 비로소 한 사람 몫을 감당한다. 그러니 아직 성과를 낼만한 위치에 오르지 못했거나 이제 막 성과를 내기 시작한 직원들이 번아웃을 겪고, 그래서 이직한다는 것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들과는 너무나 다른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도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그런 현상에 대한 기존 직원들은 “MZ세대가 개인의 만족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라던가 “이전 세대보다 참을성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답이었다면 저자가 굳이 이 책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자연히 그 세대의 일원인 저자의 생각이 궁금했다.
저자는 “MZ세대의 45% 이상이 높은 업무 강도와 업무량으로 인해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으며, 실제 2021년 신규직원 열 명 중 세 명은 입사 1년 내에 조기 퇴사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MZ세대의 성장 환경을 꼽는다. 방송을 들으며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MZ세대가 성장기부터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것이 누적되어 “사회 진출과 동시에 번아웃 위험에 처한 전무후무한 세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2007년 교육방송에 따르면 초등학생은 평균 세 개 이상 사교육 기관에서 하루 2시간 37분 동안 공부한다. 학업에 대한 압박 속에서 무려 27%의 초등학생이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 MZ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우울, 짜증, 긴장, 걱정 등의 부정적인 심리적 경험을 해왔다. 대기업과 공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직무관련 자격증, 어학시험 성적, 해외연수 경험, 봉사활동 경력, 인턴 경력 등의 스펙을 쌓아야 한다.”
말하자면 2000년대 초반에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이 지금 MZ세대를 구성하고 있는 셈인데, 그렇다면 저자의 이 설명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사회진출과 동시에 번아웃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구구절절이 맞는다. 우리 세대, 그리고 우리 자식 세대까지만 해도 그런 부담은 없었다. 그저 좋은 성적으로 좋은 학교를 졸업하면 됐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그저 단편적으로 들었던 것이 하나둘 엮어지면서 그들이 처했던 환경을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MZ세대의 현재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보상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일부 MZ세대는 팀장이나 임원 자리를 바라지 않기도 한다. 2021년 구직 플랫폼 조사 결과 직장인 47%가 승진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높은 직급에 오르면 부담감과 책임감은 느는 반면 월급은 역할 대비 크게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승진보다는 자아실현과 워라밸, 자기 개발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근로소득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출발선의 차이를 보며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학습했다. 이 좌절감 때문에 MZ세대가 결혼과 출산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면서 “과도한 업무 뿐 아니라 의사결정에 대한 권한이 없는 조직 문화,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무기력한 업무 환경, 의미를 찾기 힘든 업무나 미흡한 보상 역시 번아웃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번아웃을 완화시키고 더 나아가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런 문제요소를 제거하면 되는 일이다. 물론 그 중 어느 것도 만만한 일이 없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를 줄일 수 없다면 의사결정 권한이나 자율성을 부여할 수는 있지 않을까. 활력을 찾을 수 있는 방법도 강구해봐야 할 것이고. 사실 의사결정 권한이나 자율성은 굳이 번아웃 증상에 대한 해결책으로서가 아니더라도 기업 성과를 높이기 위해 진즉에 해결해야 했을 문제이다.
또한 저자는 “리더로부터 충분히 지지받는다고 생각하는 직원은 그렇지 않은 이에 비해 번아웃을 70% 정도 덜 경험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딜로이트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긍정 피드백과 부정 피드백의 이상적인 비율은 6:1이고, 긍정 피드백 보다 부정 피드백이 더 많았을 때 성과가 가장 낮았으며, 부정 피드백보다 긍정 피드백이 두 배 많았을 때 적당한 수준의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또한 기업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니 재론의 여지가 없겠다.
하나 생각하지 못했던 대책이 있었다. 저자는 심리전문가의 도움을 중요한 해결책 중 하나로 꼽는다.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MZ세대 74%가 심리전문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으며, 이들 중 43%는 대면 및 심리 상담과 치료를 원했다고 한다. 우리 때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어서 그 효과를 짐작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비교적 손쉽게 쓸 수 있는 대책이니 기업에서 우선 추진할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저자는 휴가 역시 효과적인 번아웃 예방책이라며 “일주일 정도의 짧은 휴가가 아닌 한 달에서 1년 정도 되는 리프레시 휴가”를 언급하고 있다. 예전에 나였다면 말도 되지 않는 방안이라고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가능한 이유가 수없이 많을 것이니 말이다. 비용도 문제이지만 업무의 연속성도 매우 중요한 걸림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1년에 한 달 휴가를 받으며 살아보니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더라. 발상을 바꾸면 해결할 길을 찾을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카카오는 3년 마다 한 달 동안 유급휴가를 주고 네이버는 3년 근속 시 최대 6개월의 무급휴가를 주는데, 네이버에 근무하는 30대는 직원은 이 제도 때문에 이 회사에 뼈를 묻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MZ세대 당사자가 쓴 책을 통해 MZ세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가 진단한 현상이나 그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책이 현장에 있는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들로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 동기부여라던가 의사결정 구조, 보수체계는 이미 수없이 검토했을 것이다. 나라면 저자가 제안한 여러 대책 중에 제일 먼저 심리전문가의 도움을 얻는 것과 휴가 제도를 검토해볼 것 같다. 휴가 제도, 그거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