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울 때 성경이 큰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었다. 애매하게 고통을 당하는 의인들의 간구가 특히 그랬는데, 사실 나를 그들의 모습에 빙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애매하게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내 실수와 내 잘못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의인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매하게 고통을 당하는 의인의 간구에 기대면서도 늘 민망했고 그 간구가 과연 상달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아침에 성경을 쓰는데 “나를 부당하게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또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는 자가 많다”는 고백에 눈길이 멈췄다. 내가 부당하게 미움을 받아서가 아니었고, 내가 선을 따르는 데도 나를 대적하는 자가 많아서도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를 부당하게 미워하고 선을 따른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적으로 여겼던 것은 아니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기도하면서 내가 피해자였다고 생각했지 내가 가해자였다고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가해자였던 때가 적지 않았을 텐데. 아니, 피해자였던 때보다 가해자였던 때가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여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