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두리반
2021년 11월 29일
아버지는 예순아홉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 중에 유독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아버지 돌아가신 나이가 되었을 때 무척 두려웠다고 했다. 우리는 부모 세대와 달리 의술이 발달한 세대에 살고 있고 모든 여건이 나아지기는 했다. 그래도 나이 들어간다는 일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고혈압과 당뇨로 고생하셨고 네 번째인가 쓰러지셔서 한 해를 꼬박 누워계시다 돌아가셨다. 쓰러지시기 전에 약한 치매 증상도 보이셨다. 그 내력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니 나도 다를 것이 없겠다 싶어 모든 면에서 조심하면서 살아왔다. 다행히 큰 병치레 하지 않았고 지금껏 평균 이상의 건강은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열심히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손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할 듯싶어 매일 성경을 쓰고 있기도 하다.
요즘은 기대수명이 우리 부모 세대에 비해 좋이 일이십 년은 늘어났지 싶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건강수명은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살지만 그 늘어난 시간을 병상에서 보낸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노년이란 가급적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원래 자신이 살던 곳에서 말년까지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며칠 전, ‘노인의학’에 대한 방송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의학’이라는 분야가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노인의학 전문의는 없단다. 고령화국가를 넘어 초고령국가가 코앞이니 앞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 싶다.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어서 아산병원에 노인내과에서 근무하는 그가 쓴 책을 찾았다. 노인의학에 대한 두 권의 저서 중 우선 첫 번째.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65세부터 ‘노인’으로 여긴다. 경제인구도 65세까지 아닌가. 그런데 저자는 노인을 ‘임상노쇠척도’라는 기준으로 분류한다. 1등급 매우 건강에서 시작해 건강, 건강관리 양호, 이주 경미한 노쇠, 경미한 노쇠, 중증도 노쇠, 중증 노쇠, 초고도 노쇠까지 8등급으로 나눈다. 그리고 5등급인 경미한 노쇠(mildly frail)부터 ‘임상적인 노인’으로 분류하는데, 물리적인 나이로는 대체로 75세 정도라고 한다. 이후에 언급하겠지만 5등급부터 노인의학의 대상으로 여긴다.
국어사전에서는 ‘노화’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체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저자는 노화가 일어나는 속도나 정도는 타고난 유전자 뿐 아니라 유년기부터 누적된 생활방식이나 살아온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화’가 쌓여서 ‘노쇠’하게 된다.
저자는 활력이 떨어져 운동량이 줄면 만성질병 상태가 나빠지고 자연스럽게 식욕도 떨어져 먹는 양도 줄고 결과적으로 근육량도 줄어든다고 말한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어지러움을 느끼고 그러다 보니 넘어질까 두려워서 운동량이 줄어들고, 이렇게 ‘노쇠’가 악순환되는 것이다. 노인이 악순환의 고리에 진입하면 2~3년 사이에 근육이 다 빠져버리고 종국에는 스스로 입고 씻고 화장실 가는 것과 같은 기본적 일상생활 수행능력마저 잃어버린다.
저자는 만성 질환은 대부분 주요 장기의 노화가 축적된 결과이며, 그러니 나이가 들면 가진 병의 개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중 73퍼센트는 둘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4.1개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임상노쇠척도’에 따른 노인은 5등급부터이다. 4등급인 ‘아주 경미한 노쇠’는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활동이 자유롭지 않고 서서히 타인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 정도까지는 임상적 노인으로 분류하지 않으므로 그저 일반 병원에 가면 된다. 임상적 노인에 해당하는 5등급인 ‘경미한 노쇠’는 “행동이 둔화되고 일상적인 행동 중 다소 어려운 동작에는 도움이 필요한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가 되면 일반 병원이 아닌 노인내과를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네 개의 질병을 갖고 있으면 네 명의 다른 의사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임상적 노인이 되면 신체의 많은 기능이 떨어져있는 상태이고, 드러나지 않은 질환도 많기 때문에 사소한 투약에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그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다른 약을 다시 복용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노인들이 약 바구니를 끼고 사는 것이 바로 그런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임상적 노인의 특성을 고려할 수 있는 노인내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상적 노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소한 처방이 어떻게 악순환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관절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할머니 환자에게 A의사는 소염진통제를 처방했다. 소염진통제를 복용한 할머니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심부전이 악화해 호흡이 곤란해졌다. B의사는 심부전을 치료하기 위해 이뇨제를 처방했다. 이뇨제를 복용하자 어지럼증이 발생하고 소화가 잘되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C의사는 소화제를 처방하고 영양제 주사를 놓았다. 영양제 주사를 맞고 소화제를 복용하자 붓고 변비가 생기고 식사량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인지기능이 떨어졌다. 인지기능이 떨어지자 D의사는 치매 약을 처방했다. 치매 약을 복용한 할머니는 소화불량이 계속되고 요실금이 생겼다. 단지 관절통증으로 걷기가 다소 불편했던 할머니는 그렇게 병원을 전전하면서 석 달 만에 노년 내과를 찾았다.”
환자가 젊은 사람이었다면 소염진통제 복용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화로 이미 신체기능이 떨어진 할머니 환자는 그것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할머니는 모두 15종의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처방조정을 통해 이를 8종으로 줄이자 할머니는 한 달 만에 걸어서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다.
요즘 의사들은 이전과는 달리 임상적 노인의 특성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인 각자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병력과 투약 내용을 알아야 하는데 의료보험 수가에서 (결과적으로) 정해놓은 3분 진료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노인내과는 무엇보다 환자의 상태를 충분히 관찰하고 검토할 뿐 아니라 약제의 상호작용이나 부작용을 감안해 치료와 처방을 내린다고 한다. 그렇다고 진료비를 더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그건 병원 소관이고 그저 스스로 5등급이 넘는 임상적 노인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경우 노인내과를 찾으면 될 일이 아닌가 한다. 노인내과가 개설된 병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서울에서는 조금만 수고를 하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노인이 많은 지방에서는 그런 혜택을 받기가 어렵지 않겠나.
앞에서 예전에 비해 수명은 연장되었어도 건강 수명은 그만큼 연장되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아무튼 수명이 계속 연장되고 있는 건 사실인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저자는 놀랍게도 수명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속도로 연장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선진국에서 기대수명 연장이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의료환경이나 생활습관이 현대인의 노화 속도를 점차 빠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1950년대와 1960년대 출생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건강 수명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것은 그 세대가 어렸던 시절에 당분이나 가공식품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아울러 세계 최상의 의료보험 체계가 갖춰져 만성질환을 조기에 관리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1980년대 출생한 사람들부터는 어려서부터 활동 저하와 과잉 열량에 시달리면서 자랐고, 비디오 게임과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잔다는 것이다. 의료환경이야 더 나아질 수도 있지만 생활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노화 방지에 확실한 것은 적게 먹고 충분히 움직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청량음료나 주스는 아예 이 세상에 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고, 이미 기본 값이 되어버린 국수나 빵이나 흰밥 같은 단순당과 정제곡물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당과 정제곡물을 섭취하면 치솟는 혈당을 잡으려 인슐린이 마구 분비되고, 이렇게 떨어진 혈당은 내장지방으로 저장되며, 내장지방은 노화를 가속시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한 가지 목표에 치중하지 말라고 권한다. 체중을 재면서 일희일비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체중에만 매달리다 보면 나중엔 근육인 다 빠지고 지방만 남는다. 그러니 애초에 참는 노력을 줄여서 억지로 노력하지 않고도 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소에 절식하다가도 때로 푸짐하게 먹을 수도 있고, 그렇게 실컷 먹은 뒤 다시 절식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잘 먹은 음식은 근육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변동성은 생길 수밖에 없으니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되 다만 언제든 절식 목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상태로 돌아오면 된다고 강조한다.
노인의 건강관리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60대부터는 단백질을 늘려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충분히 단백질을 먹어주려면 결국 자신의 식욕보다 더 잘 먹어야 한다. 병이 있거나 약을 먹거나 미각이나 후각이 떨어져서 식욕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더 잘 먹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운동을 같이 하지 않고 단백질만 먹는 것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쇠를 뒤집는 데는 걷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추가로 근력운동을 더 많이 해주어야 한다. 안전성과 효율성 측면에서는 브리지와 의자 스쿼트보다 나은 운동은 별로 없다.”
수 년 간 걷는데 치중해왔다. 하루 만 보를 기본으로 삼고 하루걸러 10킬로미터씩 걸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것만으로는 근육을 키우기는커녕 손실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근육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근력운동이 중요하다고 한다. 갑자기 체중이 늘어 지난 연말에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거의 매일 근력운동을 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노인건강에 필수요소라는 게 아닌가. 갑자기 늘어난 체중이 효자 노릇을 한 셈이구나.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저자가 권한 것 중에 신경 써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알고 있는 병의 목록과 약의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는 것이다. 그래야 다약제에 의한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나. 저자 역시 그 점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내가 먹는 약 한눈에’ 서비스를 활용하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새 약을 처방 받거나 새로 병원에 방문하게 되었을 때 의료진에게 참고 자료로 보여주는 걸 습관으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