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03.03 (금)

by 박인식

안국동 주변에 근무하는 교우가 있어 언제부턴가 식사 한 번 하자고 벼르기만 하다 오늘 만나 점심도 먹고 창덕궁도 함께 돌아보고 창덕궁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차를 마시며 수다 삼매경. 어제까지만 해도 쌀쌀하더니 오늘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먼 곳에서 사는 교우 내외가 일부러 나왔다.


순종의 계비이셨던 윤비께서 돌아가신 게 우리나라 궁중 장례의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찾아보니 1966년 2월이었다. 그때 국민학교 6학년이었는데, 신설동 로터리에서 노제를 지낸다고 해서 친구들과 함께 돈암동에서부터 걸어가 엄청난 인파 속에 섞여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윤비께서 마지막까지 기거하시던 곳이 창덕궁 낙선재였다. 윤비께서 돌아가시고도 이십 년 넘게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께서 기거하셔서 개방되지 않았던 곳이다. 아마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동안 개방되지 않았지 싶다.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바빠서, 그래도 나라의 어른이 사시던 곳인데 예의가 아니지 싶어서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야 처음 들어가 봤다.


대갓집이라면 있음직한 규모인데 대문을 지나 마주서는 순간 위압되는 느낌이 들었다. 여태 본 어느 고택과도 비교되지 않는 기품이 있었다. 자세히 뜯어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데, 전체적인 조화도 그렇고 단청을 칠하지 않은 목재에서 우러나는 색감이 기품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궁궐 안에 지은 사대부 주택으로 이곳 말고도 바로 창덕궁 후원에 연경당이 있지만, 그곳에서 소박하다는 느낌은 들었어도 기품을 느끼지는 못했다. 오늘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살피지 못했는데 언제 다시 와서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평균 수명이 여든을 넘겼다는데 그래봐야 몇 년 안 남았다는 말에 잠시 침울. 장기기증이며 시신기증 이야기에, 화장하면 그만이지 뭐 한다고 납골당에 남겨놓느냐는 이야기까지. 우리야 그렇다고 치지만 산 날보다 살 날이 훨씬 많은 젊은 교우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그로테스크했겠다. 아내가 젊은 사람 만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괜한 말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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