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텍스트로 생각을 표현했다면 요즘은 이미지로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으로, 틱톡으로 옮겨간 것을 보면 그렇다. 노래도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가사와 선율이 중요하던 것이 이제는 랩과 비트로 바뀌었다. 소설도 크게 다르지 않아 예전에는 이야기였던 것이 이제는 이미지나 스냅샷으로 바뀌었다.
오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를 다녀왔다. 독서클럽에서 만난 친구가 25분짜리 단편영화를 발표했는데, 영화 마치고 둘러앉아 한참 복기를 하고나서야 그가 의도했던 게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대리운전 호출을 받고 가니 호출한 노인은 인사불성으로 취한 채 합천으로 가자고 한다. 대리운전비 두 배를 받기로 하고 합천에 도착하지만 깨어난 노인은 오히려 의아해한다. 그러다 그곳이 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인 것을 깨닫는다. 마을 이장이었던 노인은 수몰 보상 때문에 마을사람들과 갈등하다 고향을 떠나 사십 년 발을 끊었다고 했다. 탈북 청년인 대리운전기사는 함께 탈북한 누나에게서 부모님 제사 지내야하지 않겠느냐는 전화를 받고 돌아가신지 아닌지도 모르는 부모님 제사는 왜 지내냐며 전화를 끊는다. 노인은 마을이 수몰된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탈북 청년은 부모님과 헤어진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 자기 책임이라고 여기는 두 사람이 만나 수몰된 마을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연출 조문호
이 영화를 만든 이가 탈북청년이다. 함께 영화를 봤던 커플도 탈북청년이고. 그 중 한 사람이 나이보다 한참 늦게 교대를 졸업하고 어제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로 첫 출근을 했다.
오늘 하루를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세 컷쯤 되지 않을까? 탈북과 자책감을 매개로 하는 영화와, 그것을 만든 이와, 그것을 감상한 이, 이렇게 세 컷. 그런데 정작 나는 이미지로 세상을 읽는데 아직도 서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