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페북에 올라온 사진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중년의 사내가 넥타이는 반쯤 풀고 셔츠를 내놓은 채로 작은 배 위에서 노를 젓는 모습이었다. 피곤에 찌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못하는 눈빛의 사내가 마치 내 자신인 듯 느껴져 굳이 작품의 제목이나 작가의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특이한 것은 그 배가 놓여있는 곳이 목욕탕 욕조였다는 것이다. 독특해 보였지만 피곤에 찌든 중년의 그 사내에겐 그 설정이 더없이 어울렸다.
눈발이 날리던 1월 어느 날, 지인을 따라 삼청동에 있는 사진박물관을 다녀온 일이 있다. ‘뮤지엄 한미’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었는데, 그곳 별관에서 마치 모자이크 같은 사진작품을 만났다. 그동안 작품사진이라면 피사체에 손을 대거나 연출을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내게 그런 정도를 훨씬 뛰어넘어 전혀 다른 사진을 조합해 만든 작품사진은 낯설고 이질적으로 여겨졌다. (전시기록을 다시 살펴보니 원성원 선생의 작품이었고 그 작품에 사용한 기법을 ‘콜라주’라고 한단다.)
‘뮤지엄 한미’의 경험 덕분에 내가 사진작품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품사진이란 ‘있는 사실을 작가의 앵글에 담아내는 것’에서 출발해 ‘콜라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에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사진의 작가 정윤순 선생의 전시회 광고가 올라왔다. 이때쯤 가면 좀 한가하지 싶어 오늘로 날을 잡았는데, 관객이 너무 없어 민망하더라는. 덕분에 작가와 이야기도 나누고 궁금한 것도 묻고. 사진작품이 올라오면 작품의 의미나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는 게 순서일 텐데, 태생은 어쩔 수 없는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공력이 얼마일까 짐작하는 게 먼저가 되고 만다. 선생과 말씀을 나누다 보니 내 짐작이 그다지 빗나가지는 않았더라는.
‘Me, Sailing’이라고 이름붙인 정윤순 선생의 전시회는 강남역 1번 출구 스타벅스 22층 ‘스페이스22’에서 이달 말까지 열린다. 매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7시까지 열리는데,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