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기억하는 방법
김승섭
난다
2022년 2월 10일
이제는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이 용어는 몹시 낯설었다. 이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이 극심한 외상을 겪었을 때 일어나는 불안장애로, 정신과 질환으로 다루어진다고 한다.
“자신이 처절하고 잔인한 고통을 겪거나 누군가 그런 고통을 겪고 그러다 죽음에 이르는 광경을 목격했다면 그 충격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고, 때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충격이 희미해지고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잊히게 마련이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그걸 어떻게 일일이 가슴에 담아두고 살겠는가. 때로 그 고통을 오래도록 호소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고통에 예민한 모양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내심 지나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극심한 고통을 겪거나 목격한 사람들에 대한 내 이해의 수준은 딱 여기까지였다.
살면서 사회적으로 큰 참사를 여러 번 겪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 아파하고 한동안 애도하는 마음으로 매사를 절제하며 지냈다. 피해자나 그 가족들이 참사를 야기한 사회시스템을 지적할 때 공감하고 함께 분노를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목소리가 지나치다싶을 만큼 커지면 시선은 자연히 그들로부터 멀어졌고 급기야는 그들을 불만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내가 그들의 고통을 조금씩이라도 이해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PTSD라는 용어가 익숙해질 때쯤이었고, 그것은 김승섭 교수의 연구결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전작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비롯해 그가 대중에게 발표한 글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지 거듭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해고노동자와 성소수자의 건강, 소방공무원의 인권, 세월호 생존학생의 실태에 대한 연구에 이어 천안함 생존 장병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고 그 결과를 이 책으로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저자는 PTSD는 “정신과 질환으로,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이 생명이 위협받는 극심한 외상을 경험한 이후 생겨날 수 있는 불안장애 중 하나이다. 이 환자는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반복적으로 고통스러운 사건이 생각나서 그 사건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회피하고, 그런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감각해진다. 그 과정에서 자율신경계가 과도하게 각성되어 잠을 자지 못하고 쉽게 놀라는 것과 같은 불안상태가 계속된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PTSD가 공식 진단명으로 처음 등재된 것은 1980년으로, 이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군인에 대한 연구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대중들은 ‘정신적 트라우마가 인간을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고 그 원인을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 당사자의 기질이나 가족력에서 찾으려 했다. 그러니 피해 당사자는 고통과 수치심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영국 정신의학자 한 사람은 1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 생존자를 ‘공포에 굴복한 비겁한 군인’으로 매도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욕과 처벌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단다.
저자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천안함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서해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이라고 하면 폭침으로 가라앉은 군함과 순직한 장병 46명을 떠올린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그 군함에 함께 탔던 생존장병 58명을 철저하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천안함 생존장병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실태조사가 시작된 것은 사건이 8년이나 지난 2018년이었다. 연구 결과 이들 중 사건 후 한 번이라도 PTSD 진단을 받거나 치료 받은 적이 있는 이가 91.3%,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경우가 58.3%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경우는 29.1%였다. 베트남 참전군인 중 한 번이라도 PTSD를 경험한 사람은 30%,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참전군인은 13%였다. 이들 중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경우는 5.2%로 천안함 생존장병의 10%에도 미치지 않았다.”
저자는 사건 후 8년이나 지난 2018년까지 어떤 생존장병은 탈출구가 없는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면 불안도가 높아져 아직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다른 생존장병은 업무에서 벗어나 긴장이 풀리면 팔과 다리가 오그라들고 동공이 풀리는 발작 증상을 보이고, 생존장병 대다수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한다.
PTSD가 이와 같이 치명적인 정신질환인데도 불구하고 생존장병의 절대다수는 PTSD로 고통 받으면서도 정신과 군의관을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정신과 군의관을 만나도 신체적 외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엄살로 생각하는 것처럼 느꼈다는 생존장병이 70%가 넘었다. 동료들 또한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관심병사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에 상당수의 생존장병은 진료를 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정신과 군의관의 치료가 효과 있었다고 대답한 생존장병도 두 명에 불과했다. 저자는 이런 일이 군의관의 전문성 부족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군의관이 PTSD를 군인정신 부족으로 해석했다는 말이 아닌가. 결국 그 말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말이지 무슨 다른 뜻이 있겠는가.
트라우마는 삶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경험이기 때문에 회복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안정을 취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다음으로 트라우마의 기억을 탐색하고, 최종적으로 그 기억을 현재 삶 속으로 통합시켜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생존장병들은 인양된 천안함에 다시 들어가 유품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시신을 감별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저자는 대다수의 생존장병은 20대 초반이었고 가장 어린 장병은 20살로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적게는 세 살 밖에 차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덧입힌 것이다.
생존장병들이 겪은 고통은 이것뿐이 아니다. 자신들도 치료 받아야 하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경계에 실패하고 전투에서 지고 돌아온 패잔병이라는 낙인과 피폭의 책임을 묻는 사회적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생존장병들은 치료를 받고 있는 도중에도 밤이 되면 진료실에서 헌병에게 사건 진상을 조사받아야 하던 것을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사건 2주 후 그들은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동원되어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기자회견에서 최원일 함장은 군복을 입고 나머지 생존장병들은 환자복을 입었는데, 저자는 이런 배치가 생존장병의 패잔병 낙인을 강화했고 천안함 사건에 대한 책임을 최원일 함장 개인에게 돌렸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기자회견은 하지 말았어야 했고,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모두가 군복을 입도록 했어야 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연구에 참여한 생존장병 모두가 폭침의 책임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을 뿐 아니라, 군 최고위급 통수권자인 합참의장 후보자가 국회에 출석해 천안함 사건이 장병들의 경계 실패 때문에 발생했다고 공개적으로 규정한 바도 있다.
저자는 천안함 폭침은 당시 남북한 대치 상태와 지휘부의 문제와 천안함의 무장 한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서, 장병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고 서술한다.
“서해는 두 차례 연평해전과 대청해전을 비롯한 군사적 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났던 지역이다. 천안함이 가진 장비로는 잠수정과 어뢰를 포착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장병들이 아무리 철저하게 경계를 선다고 해도 자신들의 힘만으로 이 사건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사건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졌던 지휘부는 사건 전에는 기무사령관의 수중 침투 사전 징후 보고를 무시했고, 사건 후에는 현장 함장이 직접 지시해 보고한 어뢰 공격 내용을 누락시켰다.”
결국 지휘부의 작전ㆍ정보 실패와 무능한 대응을 힘없는 천안함 장병들의 잘못으로 돌려 책임을 전가하려다 보니 생존장병에게 패잔병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다.
생존장병 58명 중 장교와 부사관은 44명이었다. 즉 생존장병의 대다수가 직업군인이었다는 것이다. 2021년 5월 기준으로 이들 중 16명이 전역했다. 그들은 병원 치료를 받는 것이 눈치 보여서, 그것이 정신과 치료여서, 패잔병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트라우마로 인한 함선 복무기간 부족으로 인사나 보직에 차별을 받으면서 직업군인으로서 꿈꾸던 삶을 포기해야 했다.
저자는 사회적 고립을 겪을 때 신체적 통증을 느낄 때와 동일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전하며, 어느 조직보다 집단적 성격이 강한 군대에서 다른 구성원들에게 비난받으며 심리적 적대감을 경험한 시간들이 생존장병의 몸에 큰 상처를 남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직업군인으로 살아가기 원했던 이들이 근무 중 트라우마를 경험해 당장 직무상 필요한 일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 과연 그 사람을 전역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그런 과정을 지켜본 군인들에게 유사시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지 묻는다. 준엄한 질책이 아닐 수 없다.
생존장병들은 천안함 폭침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그들에게 찍힌 패잔병이라는 낙인으로 사건이 일어나고도 십 년이 넘도록 고통을 겪어오고 있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대로 대한민국 같은 휴전 중인 나라에서 해군 함정이 침몰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이고 군사적 대응이 적절했는지 따지고 그 정치적 파장을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사건과 함께 사람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한 것이었는데, 병원을 찾아가 취재하려던 기자들도 생존장병을 ‘천안함 폭침과 관련된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을 뿐 사건 이후 그들이 생존자이자 피해자로서 겪어야 하는 트라우마와 상처에는 관심이 없었다. 약자를 대변한다는 진보진영은 ‘천안함 좌초설’과 같은 당황스러운 주장에만 동조할 뿐 생존장병들이 어떤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트라우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무고한 피해자였다. 그런데도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보수진영으로부터는 엄살떠는 나약한 패잔병이라 비난받고 약자를 대변한다는 진보진영으로부터는 ‘천안함 좌초설’을 감추려드는 공범이라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지금껏 그 누구도, 어떤 진영도 그들이 받는 고통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물론 그들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했거나 안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저자의 연구 팀이 이 문제를 파고들어 공론화함으로서 사안의 심각성이 드러나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어서 몹시 안타깝다.
실제 복무 능력과 무관하게 단지 유방암 수술을 받아 유방을 제거했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 당했던 피우진 중령의 소송으로 2007년 군 인사법의 시행규칙이 개정되었다. 그 결과 직업군인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심신장애 1~7급을 받으면 무조건 전역했던 이전과 달리 당사자가 계속 복무를 원할 경우 심사를 거쳐 전역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은 시행규칙 개정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었는데도 생존장병들은 누구도 실질적으로 개정된 군 인사법 시행규칙의 적용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적용을 받을 수가 없었다. 생존장병을 전역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법이나 제도를 넘어 혐오와 편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 연구결과가 그를 시정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으로 인해 수많은 문제와 미비점들이 차츰 시정되고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저자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의 글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럴 만큼 충분한 힘이 있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한 그의 땀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