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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05. 2023

계간 <서울리뷰오브북스> 8호

서울서평포럼

2022년 12월 5일


서평 전문 계간지인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작년 말에 읽었던 최병천의 <좋은 불평등> 서평이 올라왔다는데 발간 날짜가 한참 지나고도 도서관에 입고가 되지 않았다. 기다려도 입고가 되지 않아 사서에게 물어보니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몇 달을 별러 오늘에야 읽었다.


최병천의 <좋은 불평등>에 대한 김두얼의 서평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정책 전문가가 민주당 정부의 정책노선과 다른 책을 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비록 경제에는 문외한이지만 지난 정부의 정책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터라 관심이 가기는 했어도 굳이 찾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저자가 삼프로TV에 출연해 이야기 나눈 것을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 책도 읽고 며칠 전 스물다섯 번째로 올라온 것까지 그의 삼프로TV 강의를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다.


김두얼 교수 역시 삼프로TV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강의 덕분에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겼던 경제와 경제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깊이 있는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서 그가 하는 강의를 챙겨가며 듣는다. 그런 그가 인상 깊었던 책에 대한 서평을 올렸다니 여간 반갑지 않았다. 마침 <서울리뷰오브북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 <리뷰의 발견>에도 출연해서 그것 역시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저자인 최병천 소장은 그의 저서에서 1) 불평등은 대체로 상위계층의 소득 증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불평등이 다 나쁜 것은 아니며, 2)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중국과 수교한 1994년을 계기로 확대되었고, 3) 따라서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중국발’ 불평등이고, 4)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하고, 5) 노년층에 대한 재분배정책이 가장 효과적인 불평등 해소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평자인 김두얼 교수는 “모든 불평등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경제성장 때문에 불평등이 증가했다면 오히려 좋은 것이라는 주장은 극단적으로 불평등을 문제 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아울러 경제성장으로 소득 격차가 확대되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이득을 더 많이 본 사람들로부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소득 재분배가 일어나는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분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정부의 재분배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1994년을 기점으로 확대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평자는 “1997년 외환위기를 우리나라 불평등 확대의 기점으로 보는 주장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에 심정적으로 동의하기는 하지만, 1994년 임금의 지니계수가 가장 낮았다는 것을 근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1994년 지니계수가 가장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해에 비해 편차가 그리 크지 않고, 그 관점으로 보자면 1992-1997년 구간 전체가 해당되니 불평등 확대 시점이 1997년이 아니라 1994년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꼭 짚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프의 기울기가 아닌 편차(deviation)를 근거로 삼은 것은 데이터의 의미를 읽은 것이 아니라 데이터 중에서 입맛에 맞는 부분만 취했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데이터를 분석해 설계 기준치를 설정하는 일을 해온 내가 평생 맞닥뜨려야 했던 유혹이기도 했다.


또한 자영업자가 많은 우리 실정을 고려할 때 소득 격차가 아니라 임금 격차만을 가지고 불평등을 단정하는 것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같은 문제의식을 가졌다. 평자는 그럴 경우 1994년을 불평등 추이의 분기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저자도 방송에서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언급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의 지적대로라면 그 문제는 저자가 고민하고 말 일이 아니라 주장을 거둬들여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더구나 지니계수에서 1994년을 특정한 것도 무리한 결론이었으니 말이다.


저자는 ‘불평등 확대의 기점이 1994년’이라는 해석으로부터 “우리나라 불평등이 중국발 불평등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냈으며, 그 결론이 저자의 주장 대부분을 뒷받침하고 있다. 평자는 “한국 경제 불평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단 하나의 요인을 꼽는다면 그것은 중국이다”라는 저자의 주장 또한 “아무리 좋게 보아도 정황적 증거일 뿐이며, 다른 요인을 압도할 만큼 절대적이었다는 증거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출발한 저자의 모든 주장은 힘을 잃는다.


평자는 저자의 해석이 갖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아울러 자신이 생각하는 불평등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우리나라 불평등은 대외적 요인이나 국내 경제 구조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수행했어야 하는 재분배 정책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플 때 최선의 대응은 통증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질병은 원인 제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그를 때는 통증을 완화하는 접근을 택할 수 있다. 병을 완전히 치료하지는 못하더라도 질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으면서 통증을 줄인다면 결과적으로 치료한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원인 파악이 중요하지만 원인을 찾았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분배 정책은 어떤 면에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증상 완화책이다.”


아울러 불평등 해소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진보진영에서 민주화 이후 절반이나 정권을 잡았으면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문제를 정면 돌파하지 않고 우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문재인 정부는 불평등 개선의 해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정책을 강행했다.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고 입법을 통해서 세금을 올리고 정부 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정면 돌파한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으로 짐을 모두 기업에게 떠넘기는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팟캐스트 방송에서 평자가 직접 밝힌 견해를 들었지만 책으로 읽으니 저자의 해석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결코 간과될 정도가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동안 책 읽고, 리뷰 쓰고, 방송 스물다섯 개 듣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리한 내용이 무용지물인 것인가? 그것 참.


“여러분, 번역하지 마세요”라는 번역자


지난 몇 달 생각지도 않게 번역을 하게 되었다. 곧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책 내용이 모두 현지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것이니 크게 오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읽을 수 있다고 번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번역을 마치고 나니 다음번에는 이런저런 점에 좀 더 신경 써야겠다는 턱없는 생각마저 든다.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일 텐데 말이다.


번역기가 나타나고 인공지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것을 보니 이제 번역으로 밥벌이 하는 세상은 지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영학 번역자는 짧은 시간 안에 제대로 된 번역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번역기가 95퍼센트 수준으로 번역한다고 하면 흔히 사람 손이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번역기가 95퍼센트 수준으로 책을 번역한다고 치자. 온전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능한 번역가가 달라붙어 원서와 번역 원고를 비교해가며 확인하고 교정해야 하는데, 이 역시 번역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달라지는 건 인간 번역가가 인공 번역기의 보조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사실 뿐이다.”


사실 번역가가 번역한다고 해서 모두 믿을만한 것은 아니다. 2006년 <영미 고전문학 번역 평가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365종 중 단 7퍼센트만 추천할만한 번역이었다고 한다. 물론 능력이 되지 않는 번역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그보다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앞서서 번역기만으로는 온전한 번역을 하기 어렵다면서도 ‘번역가가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설문 조사 결과를 믿는다고 말한다. 전문 번역가조차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열악한 조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문 번역가의 평균 월수입이 2~3백만 원 수준이란다. 해보니 정말 그렇기는 하더라. 그는 20년 넘게 번역했지만 지난 몇 년은 집중력도 순발력도 체력도 떨어져 2백만 원을 넘은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먹고 살기 위해서 작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좋은 번역이 나온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는 것이다.


번역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번역료를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상업 출판’에서 ‘상업’이 무너지게 된다. 출판사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출판사는 실력 있는 번역가가 아니라 ‘값싸고’ 실력 있는 번역가를 찾는단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비싼 값을 치를 수는 없으니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지.


그는 번역이 과연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본주의 논리만으로 평가할 일인지 묻는다. 아울러 우리나라 출판물의 30퍼센트가 번역서인 상황에서 번역가가 멸종하고 번역서가 사라져도 좋은지 묻는다.


정말 그렇다. 그래서 더 이상 번역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면서 ‘번역청’ 설립을 요구했다는 말도 들린다. 불가능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주장했을 것이고, 내가 봐도 그렇다. 그래서 전문 번역가인 그가 <여러분, 번역하지 마세요>라는 글을 쓰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나 해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글쎄.


그동안 번역 때문에 읽으려다가 여러 번 내던진 책을 번역한 분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해야겠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말이지.


계간 <서울리뷰오브북스>


이 계간 잡지의 창간호를 읽으면서 상당한 기대를 가졌고, 그 후로 8호에 이르기까지 빼놓지 않고 읽었다. 전문 서평지답게 내용이 알차고 수준도 높다. 그래서 내게는 버겁다. 이번 8호에서도 열편이 훌쩍 넘는 훌륭한 서평이 실렸지만, 그 중 끝까지 읽은 건 <좋은 불평등>이 유일하다.


스스로 숫자로나 깊이로나 남 못지않게 읽는다고 생각하는 나도 버겁다고 느껴진다면, 이 책이 겨냥하는 독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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