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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46구간; 삼포해수욕장-장사항

2023.04.11

by 박인식

밤새 바람소리가 요란했다. 테라스로 나가니 난간을 붙들고 서있어야 할 정도였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는데 몸을 가누기 힘들어 잠시 후퇴. 셋은 걷기를 포기하고 나만 오늘 걸을 구간 출발점으로 데려다주기로 했다.


다행히 예보했던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강풍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살면서 이런 바람을 맞은 기억이 없다. 걷기로 하고 온 길이고 최근 몸이 고단할 만큼 뭘 해본 일이 없으니 이참에 몸을 한 번 혹사시키는 것도 괜찮겠다. 예정대로 출발. 단잠을 기대할만 하겠다.


청간정을 지나는 나무데크에 바람에 꺾인 솔가지가 그득하다. 강릉에 큰 산불이 났다는데 강풍으로 불길이 더 거세지고 소방헬기도 뜨지 못한단다. 온다는 비는 안 오고 바람만 거세 걱정이다. 아침에 비가 오지 않아 다행으로 여긴 게 민망하게 되었다.


봉포 지날 때 간간히 떨어지던 빗방울이 고성이 끝나고 속초에 들어설 때쯤 걷기 힘들 정도로 쏟아진다. 천둥을 동반한 폭우로 변해 마침 앞에 나타난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피신. 이 비가 얼른 강릉까지 내려가면 좋겠다.


해파랑길이 속초 들어서면서부터 오늘 목표지점인 장사항까지 국도를 따라간다. 국도로 들어서는 지점에 동해안 자전거길 안내판이 하나 있을 뿐 장사항을 지나기까지 길을 짐작할만한 아무런 표시가 없다. 덕분에 까리타스 요양원까지 들어갔다가 길이 끊어져 한참을 돌아나와야 했다.


걷는 내내 이정표가 없어서 몹시 불편했다. 30킬로미터 구간 걷는 동안 해파랑길이라고 인식할만한 표시를 두 번 보았고, 해파랑길과 함께 가는 것으로 보이는 동해안 자전거길 표시를 드문드문 보았을 뿐이다. 명색이 국토 트레킹길인데 거리를 적어놓은 이정표는 고사하고 길을 알아볼 표시조차 없다니.


어느 곳은 공사 중이라고 모래밭으로 돌아가라고 표시해 놨다. 그것도 코앞에서. 모래밭 걷는 게 영 만만치 않다. 발은 빠지고 신발로 모래가 들어가고. 모래밭 백 미터 걷기가 평지 일 킬로미터 걷기만 하다. 자전거로 왔으면 고생깨나 했겠다. 그길 들어서기 전에 표시 하나만 세워놔도 해결될 문제인데. 꼬락서니 보아하니 만들기만 하고 관리는 아예 제쳐놓은 모양이다.


오늘 하루 46구간 15.2킬로미터만 걷기가 아쉬워 영랑호 한 바퀴 걸으려 했지만, 강풍을 안고 걷는 게 생각보다 고단해 그것으로 마감. 숙소에 들어와 뜨거운 물에 씻고 나니 만사가 귀찮다. 걷기를 포기하고 술판 벌리고 잠들었던 친구들이 척산에 온천하러 가잔다. 귀찮아 죽겠구만.


걷다가 셀카 찍느라 쩔쩔매는 젊은 커플 하나, 마음만 젊은 커플 하나 자청해서 사진 찍어주는 선행을 베풀고. 구도를 바꿔가며 이리저리 찍어주니 사진작가냐고 묻는다. 사람 알아보는 눈이 있으니 복 받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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