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곳곳에 있는 성(Burg/Castle) 대부분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개조해 사용한다. 지금 사람들이 사는데 적합하지도 않고 집이란 게 워낙 사람 온기가 없어지면 망가지게 되어 있는 것이어서 일석이조의 해결책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을 왔던 조카 둘이 일정 때문에 어제 먼저 떠나야 해서 공항 가는 길에 크론베르그 성에 들러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주문하는 것도 아닌데 혜인 아범이 여직원과 이야기가 길어졌다.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자리가 모자라 옆에서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는 걸 제지하더란다. 지금껏 이곳을 다녀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규정이 바뀌었느냐, 책임자에게 그게 사실인지 물어보랴 했더니 괜찮다며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유럽인이었으면 당하지 않을 일이었다고, 그럴 때 그 사실을 환기시키지 않으면 그런 차별대우를 계속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복도 장식을 구경하려는 것도 말리길래 유럽 관광객 일행이 들어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옮겨 다니는 걸 보면서 굳이 말릴 일이 있겠느냐 물으니 자기들은 괜찮은 것도 동양인이 그러면 무례한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나 역시 십 수 년 사우디에서 지내는 동안 같은 경험을 적지 않게 겪었다. 미국인 동료 하나는 내가 상사인데도 딱히 꼬집어 지적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차별로 여겨질 만한 행동을 여러 번 했다. 글로 써놓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들을 때는 분명 비하하는 의도가 느껴지는 행동 말이다. 스스로 인종차별은 범죄라고 이야기하는 인간들이니 꼬투리 잡힐 여지는 남겨놓지 않지만, 그래서 더 언짢았다.
며칠 전 유명하다는 와이너리에 갔을 때도 같은 일을 겪었다. 혜인 아범이 전망 좋은 좌석에 앉으려는데 직원이 쫓아와 이미 예약된 자리라고 하더란다.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여 와인샵 매니저에게 이의를 제기하니 미안하다며 직원에게 이야기하겠다는 걸 그만두라고 하면서, 다음번에 왔을 때 이런 일이 없도록 유의해달라는 경고만 남기고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그곳에 들어갈 때 한국인 남성 여럿이 그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찼었다. 어쩌면 그런 차별은 자초한 면도 없지 않겠다.
자초했다고 해서 차별이 정당화 되는 건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그들은 그것이 자기들 문화나 생활방식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오후에 그곳에서 와이너리 투어가 있다고 해서 예약을 했는데, 다른 때보다는 복장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