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 아범이 결혼하던 해에 우리 내외는 리야드로 이사했다. 아이들은 독일에서 나고 자라서 휴가 때나 되어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서울보다는 훨씬 가까운 곳이어서 거의 매일 얼굴을 보다시피 했고 코로나로 길이 막힌 두 해를 빼고는 매해 휴가를 함께 보낼 수 있어 오히려 서울에 함께 사는 사람들 보다 더 자주 본 셈이다. 그렇기는 해도 휴가를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니 늘 아주 덥거나 아주 추울 때 만나곤 했다.
은퇴를 하고 나니 보고 싶을 때 아이들을 볼 수 있어 무엇보다 반갑다. 작년에는 가을에 함께 지냈고 올해는 봄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봄에는 챙겨야 할 날이 많다. 아내와 내 생일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번거로울 텐데도 아이들을 챙겨서 열심히 뭔가 만들어 보낸다. 뭐한다고 일일이 챙기느냐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그런 아이들 모습이 늘 반갑다. 이번에는 그 날들을 모두 함께 보내고 있다. 며칠 전 내 생일도 그랬고 오늘 어버이날도 그렇고, 며칠 뒤에 찾아올 아내 생일도. 혜인 아범이 자기 앞가림 잘하고 가족 잘 건사하는 것이 고맙고,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챙기는 혜인 어멈도 고맙고, 아이들은 있는 그 모습대로 고맙고. 게다가 이번에는 좋은 공연도 보고 한층 성숙해진 혜인 아범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하게 보냈다.
기력이 달려서인지 나이 탓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저 눈앞의 일만 생각하고 산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감사만 생각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미리 걱정한다고 문제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살아보니 문제가 터지면 그때 대응해도 늦지 않더라. 오늘은 오늘 허락하신 분복에 감사하면 되는 일이더라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