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장의 메커니즘
바트 어만
갈라파고스
허형은
2020년 5월 20일
PEW 연구소가 추정한 2020년 현재 종교별 인구에 따르면 기독교가 24억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어서 이슬람 19억 명, 힌두교 11억 명으로 뒤를 잇는다. 무슬림의 출생률이 높고 기독교의 성장이 주춤거리고 있어 이슬람이 기독교를 앞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종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라는 표현이 금세기까지는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천 년 전에 열두 명의 제자로 출발한 기독교가 세계 곳곳의 수많은 종교를 제치고 역사의 승자에 오르게 된 메커니즘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 중 하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남을 사랑하고 남에게 유익하게 행동하라고 명한다면, 게다가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는 그가 다가올 신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하나다. 기독교인은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도록 종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그가 구원받고 영원한 벌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아울러 기독교인이 남을 향한 사랑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는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성장의 당위성은 될 수 있을지언정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로 올라서게 된 메커니즘에 대한 답변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저자 역시 이와 같은 기독교의 당위성을 설명하자고 이 책을 쓴 것도 아니다. 신학에 문외한인 내가 저자가 치밀하게 논증한 메커니즘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저 알아들은 것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기독교 이전에는 다신(多神)주의였고, 다신주의에서는 새로운 신을 숭배하고 싶다고 해서 지금까지 숭배해오든 것을 그만 둘 필요가 없었다. 당시 유대교를 제외하고는 ‘자기들이 믿는 유일신 말고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배타성’은 매우 낯선 개념이었다. 이 배타성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완강하고도 불관용적인 열성을 보였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끼리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지만 다른 종교의 삶의 방식에 간여하지 않는데 반해 기독교인은 전례도 없고 비교할 바도 없는 전도활동을 통해 유일신 이외의 신을 숭배하는 것을 금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그때까지 천 년이 넘도록 모든 지역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온전히 진실한 것으로 여겨온 종교들을 악하고 그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종교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경쟁상대를 제거해가면서 성장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종교가 그대로 건재해 기독교가 성장해도 교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따라서 역사의 승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기독교의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교리가 몹시 불편했다. 배타성이 무례함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그것이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러웠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배타성이었다니, 그 배타성이 아니었으면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니 나로서는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의 논증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자신은 없는데,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는 예수의 가르침을 기독교라는 종교로 구체화시킨 것이 바울이라고 서술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다.
“유일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은 독실한 유대교 신자로서 바울은 자신이 구세주라고 주장하는 예수를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이 구세주라는 주장이 참람하기 이를 데 없었을 뿐 아니라 구세주가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예수의 주장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끔찍하고 위험한 모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을 보고 예수가 부활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것에 대한 기사를 정황으로 보아 문학적 목적으로 다듬어진 이야기로 해석한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 가운데서 살리신 기적을 행한 것이고,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에게 선택 받은 자임을 뜻했다. 예수가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자라면 왜 하나님은 예수가 처형당하게 내버려뒀을까? 그것도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가 당하는 십자가형으로. 바울은 그 상황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이니 그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죽은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저지를 죄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게 틀림없다’는 당위적인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예수는 희생양이고, 그의 죽음(희생)으로 다른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가라앉혔거나 그들의 죗값을 대신 해준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인류를 위해 준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였을 것이다. 만약 구원이 선민의 무리에 속한다는 것으로 또는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하나님이 택한 메시아가 극심한 고통으로 죽음을 맞아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르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과 하등 관계가 없는 게 분명했다. 만약 율법이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유대인으로 사는 것은 구원 받는데 필수적인 요구사항이 아닐 것이다. 유일한 요구사항은 예수가 베푼 희생의 속죄를 받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는 다시 구원의 메시지가 유대인을 위한 것만이 아님을 의미했다.”
바울의 생각이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변화했다면 바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유대교를 바로잡은 것이 된다. 저자는 바울의 전기작가인 앨버트 해릴을 인용해 “바울은 유대교였다가 기독교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유대교 경전에 드러난 모든 예언의 실현이라고 깨달았다”고 언급한다. 그러니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확신한 것이고, 그것이 ‘배타적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출발한 배타적 기독교는 비록 다른 종교와 공존을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전파하는 방식은 위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동안 종교와 별개로 치부되었던 삶의 모든 방식까지 종교가 지배했다. 로마시대인 4세기에 기독교인은 대규모 전도집회를 연 적이 없다. 그 대신 새롭게 기독교인이 된 이들이 자신들이 믿게 된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개인적인 인간관계 망 안에서 구전으로 전파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기독교 교리도, 기독교 숭배의식도, 기독교 공동체에서 누릴 수 있었던 많은 미덕도 아니었다. 기독교인이 삶을 통해서 기독교 메시지를 실증해준 것이 놀라운 효력을 발생한 것이다.
저자는 당시 교회 공동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교회는 장소라기보다는 공동체였다. 그것도 아주 긴밀하고 핵가족만큼 유대가 단단한 공동체였다. 교회 설립자나 지도자는 아버지였고 동료 교인들은 한 대가족에 함께 속한 형제요 자매였다. 게다가 이들은 상호 애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이기를 추구했다. 사정이 어려운 구성원들을 물질적으로 돕고 교회로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정신적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이런 방식으로 외부인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교회는 폐쇄적 공동체였고 외부인은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전까지 그런 혜택이 있는 것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얼핏 위의 서술은 앞선 “기독교인이 삶을 통해서 기독교 메시지를 실증해준 것이 놀라운 효력을 발생한 것”이라는 언급과 상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이 살아가는 모습 때문에 개종자가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기독교인으로 개종했을 경우 그들이 굳건한 믿음을 지키면서 결속력을 높이는 이유가 되었고 궁극적으로 성장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기독교가 승자로 올라서기 전의 로마제국은 경이로울 만큼 다양성을 보유한 사회였지만, 그럼에도 ‘지배(dominance)’라는 가치는 일관되게 유지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지배를 부정하는 다른 이데올로기를 설파했다는 것이다. 즉, 신 앞에 모든 사람은 동등하며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결국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로 올라선 데에는, 비록 그것이 성장의 직접적인 동력이 되지는 않았을지라도, 기독교인의 이와 같은 삶의 태도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성장하던 기독교는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개종하면서 집중 포화의 대상에서 묵인 받는 종교가 되고 다시 로마제국의 공식 국교의 자리에 오르면서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저자는 그때까지 로마제국은 제국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신들이고 국가는 그 신들을 숭배하는 풍습을 지원하고 장려하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없었다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신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기독교가 차지하게 된 것이니 정교일치 형태는 자연히 그대로 지속되었다.
저자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정복하고 나아가 서구세계 전체를 정복함으로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정하는 방식마저 바꿔놓았다고 서술한다. 그 결과 근대적 감성과 가치 윤리까지도 전부 기독교 전통에 극단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역사의 승자로 올려놓은 메커니즘이었던 ‘배타적 불관용’은 로마제국의 통치가 이루어진 전 지역에서 기독교인들마저 경악할만한 파괴로 이어졌다. 모든 곳에서 신상을 철저하게 훼손했고, 신상을 모두 십자가로 대체했으며, 신상의 이마에 십자가를 새겼다. (지금 기독교인마저 혐오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다른 종교에 대한 폭력적인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마저도 뿌리가 있다는 말인가?) 더 나아가 수도사 무리가 신상을 때려 부수고 가면 기독교 주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세례를 통해 그 자리를 정화해 성지로 만들어 이를 전유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18세기에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을 인용해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로 올라선 메커니즘으로 배타적인 불관용 이외에도 영생의 교리, 초기 기독교인들이 행한 기적, 기독교의 엄격한 도덕성과 더불어 강력한 성직 체제를 꼽는다. 당시 이교도들은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생을 누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절실하게 원했으며, 이교의 기강이 해이했던데 반해 기독교는 도덕성을 엄격하게 요구했고, 이교와 다르게 그들의 신념을 전파하는데 효율적인 성직계급 체계를 확립해 월등한 조직력을 갖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어떻게 역사적 승자가 되었냐는 책 제목에 이끌려,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기독교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준 저자의 이름에 이끌려, 기왕 저자의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번역판으로 소개된 일곱 권 전체를 읽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읽고 이해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했고, 저자의 치밀한 논증을 따라가기에는 신학에 대한 내 이해가 거의 무지에 가까웠다. 그랬으니 같은 분량의 다른 책 읽는데 드는 시간의 배를 넘게 붙들고 있었으면서도 읽어가면서 숱하게 길을 잃었다. 읽었으되 읽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는 가운데 이해한 것 하나는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가 된 것의 가장 큰 동력이 바로 ‘배타적 불관용’이었다는 점이다. ‘배타적 불관용’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는 함의처럼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세상과 화해할 수 없는 종교이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요 화평을 만드는 종교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두 개념 사이의 간극이 바로 지금 내가 당면하고 있는 딜레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남은 시간 힘을 쏟아야 하는 일은 바로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