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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22. 2023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음식으로 읽는 경제학

장하준

김희정 번역

부키

2023년 3월 30일


<사다리 걷어차기>가 워낙 인상 깊어서 이후에 출간된 장하준의 책은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 책이 발간된 것이 꽤 오래된 것 같아서 확인해보니 2004년이다. 무려 이십 년 전. 그런 그가 2014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출간하고 나서 거의 십 년 만에 신간으로 찾아왔다. 읽기 전에 먼저 신문과 방송을 통해 그를 만났다. 일반인들이 경제학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그렇게 해서라도 흥미를 가져보게 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음식이야기에서 시작해 그에 관련한 경제학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초년병 시절에 근무했던 현장의 소장께서 중국음식에 조예가 깊었다. 음식이 나오면 재료와 조리법에서 시작해 그 음식에 얽힌 고사까지 구수하게 풀어내는 솜씨에 매료되어 식사에 불러주기만 기다렸다. 육사를 마치고 영관장교로 근무할 때 대만에서 유학한 분이었다. 장하준이 음식조리법으로 경제를 설명하는 책을 냈다는 말을 듣고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저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데, 거기에 여태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를 시도했다니 그것만으로도 관심이 일었다.


읽으면서 그의 의도를 가장 잘 구현했다고 느꼈던 대목이 향신료에 관한 것이었다. 흐름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유럽에서 가장 귀하게 여겼던 후추, 정향, 계피와 같은 향신료는 유럽인이 동인도라고 불렀던 인도 남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에서만 자랐다. 2) 그런 향신료를 구하겠다는 열망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하게 만들었다. 3) 그러나 목돈을 벌기 위해 범선으로 대서양과 인도양을 건너는 것은 재산을 모두 날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런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한책임회사를 고안해냈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바로 그 결과이다. 4) 이는 자본주의 발전을 견인하는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5)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이는 오히려 성장의 걸림돌이 되었다. 6) 그 걸림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식을 장기 보유하도록 하고, 주주 권한을 제한하며, 주주가 기업의 장기적인 미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주주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유럽인들이 향신료를 귀하게 여긴 것이 유한책임회사를 만들고 자본주의를 견인했으며, 그것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지만 그건 이렇게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니 이야기 전개가 얼마나 매끄러운가. 그것으로 경제구조까지 알아듣기 쉽게 풀어내고 있으니 이 정도면 그동안 저자가 얻은 ‘경제학 이야기꾼’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 아닐 수 없다. (경제학 이야기꾼이라는 건 철저하게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책을 읽기 전에 내용이 이렇게 전개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끌어다 붙일 수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될까, 혹시 구색을 맞추느라고 크게 연관도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향신료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여길만한 항목이 몇 개 더 있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음식 이야기에 이어진 경제학 이야기가 뜬금없다고 느껴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음식 이야기에 경제학 이야기를 연결시키는데 급급했던지 경제학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를 찾기 어려웠다.


장하준 교수의 유명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다.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라는 명함 말고 경제학자로서 딱히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학술논문 실적이 미미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고, 진보진영에서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그의 긍정적인 평가 때문에 보수진영에서는 시장자유 확대와 낙수효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경제학에 문외한인데다가 그쪽으로는 아무 인연이 없다 보니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책이 재미있어서 읽었다. 늘 들어왔던 이야기와는 결이 상당히 다르면서도 나름 설득력 있는 그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그의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를 찾기 어려웠다. 너무 다양한 주제를 무리하게 꿰어 맞추다 보니 이야기가 단절되고, 그래서 읽는 내내 산만하게 느껴졌다. 특히 고추의 매운 맛 척도를 언급하다가 무보수 돌봄노동으로 비약한 것은 매우 억지스러웠다. 물론 언급한 경제 이야기가 하나하나 논의할만한 주제이기는 했다. 하지만 장하준 특유의 독특한, 독창적인 견해를 찾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딱히 새로운 견해라고 할 것도 드물었다. 대부분 이곳저곳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경제학이라면 일단 거리를 두는 일반인들에게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음식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음식 이야기에 경제학 이야기를 접목시키는 글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오랜 꿈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초에 가졌던 기대에 미치지 못해 굳이 읽을 책은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저자의 저서 중 국내에서 출간된 것은 빼놓지 않고 읽었던 것 같은데 그의 저서 어디에서도 자신의 개인사를 이렇게 공개한 것을 읽은 기억이 없다. 그래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음식 이야기만 모아서 책을 냈으면 더 읽을 만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예컨대,


“라면 국물은 외국인 기준으로 하면 ‘꽤 매움’에서 ‘정신 나갈 정도로 매움’ 수준이고, 볶음면이나 비빔면의 소스도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매운 소스가 많다. 쫄면은 풍성한 채소와 함께 맵고 새콤달콤한 고추장 소스에 비벼서 먹는다. 엄청난 쫄깃함과 눈물을 쏙 빼는 매운맛의 조합 덕분에 쫄면을 먹는 경험은 철인3종 경기에 비견할 만하다. 극도로 어렵지만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짜장면은 한국에서 발명된 ‘중국’ 음식이라는 의미에서 영국에서 발명된 ‘인도’ 음식 치킨 티카 마살라와 비슷하다.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K드라마 팬이라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거의 맨날 먹는 커피 색깔의 국수 말이다. 먹는 장소도 식당 뿐 아니라 사무실, 집, 심지어 경찰서 취조실 등 다양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음식에 대한 상식도 넓힐 수 있었다. “매운 맛은 타는 듯한 느낌, 특히 점막을 태우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매운 맛의 주역인 캡사이신은 직접적으로 조직을 손상하지 않는다. 캡사이신은 몸이 극단적인 온도나 산 또는 부식성 물질과 접촉하거나 찰과상을 입었다는 감각수용체와 결합해서 이런 효과를 낸다”던가 “러시아에서는 차에 딸기 잼을 넣어 달콤한 맛을 더하고 차의 떫은맛을 중화시킨다”는.


세계적인 파스타 생산업체가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파스타 디자인을 맡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멋진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상용화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현대차 포니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노는 폭스바겐 골프부터 마세라티까지 100종 이상의 차를 디자인했다. 그런 그에게 세계 최대 파스타 생산업체인 바릴라에서 그에게 ‘소스를 너무 많이 흡수하지 않으면서 잘 머금을 수 있는 동시에 장식적, 심지어 건축학적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궁극의 파스타’를 디자인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아름답고 초현대적인 튜브와 파도를 합친 듯한 모양의 마릴레라는 파스타를 디자인했다. 하지만 파스타 모양이 너무 복잡해 골고루 익지 않아서 제품 개발은 실패로 돌아갔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오류로 보이는 것이 눈에 띄기도 했다. 11장 호밀 편에서 애거사 크리스티가 쓴 소설이 200억 부 팔렸다고 언급하고 있다. 지구 인구가 80억 명에 미치지 못하는데 200억 부라니. 물론 한 사람이 여러 부를 구매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과하다 싶어 찾아보니 영어권 비영어권 각각 10억 부씩 총 20억 부가 팔렸다고 하며, 기네스북이 공인한 것도 이 숫자이다.


경제학 관련 내용 중 기억할 만한 구절 하나.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다. 반론의 여지가 없이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이 없다는 말이다. 모든 상황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경제학적 해결책이나 모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 경제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거기에 맞는 경제학적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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