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쿨란스키
김희정 번역
와이즈맵
2022년 8월 15일
우유는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을 비롯해 120개에 달하는 영양소가 들어 있어 완전식품으로 불린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우유를 못 마시는 이들이 있다.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증상을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이라고 하는데, 이는 체내에 우유를 소화하는데 필요한 락타아제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워낙 포유류가 태어날 때는 체내에 락타아제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먹이를 소화할 준비가 되면 유전자가 개입해 락타아제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먹이를 소화할 정도로 자란 포유류에는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사람은 포유류이기는 한데 이 점에서는 포유류와 달라서 우유를 소화시킨다. 그렇다면 우류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포유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완전식품이라면 사람에게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국 낙농협회는 1915년 결성된 이후 우유가 아이들의 성장과 건강에 반드시 필요한 식품이라고 주장한 바 있었고, 일반인들도 우유가 아이들 키 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연구결과 아이들의 키를 크게 하는 요소인 IGF-1이 아이들 키가 크는데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저자는 우유가 아이들 키 크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은 어쩌면 아이들의 키가 많이 자라는 시기가 아이들이 우유를 가장 많이 마실 시기이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우유는 젖소에서 짠 그대로 마시는 것이 아니다. 유해한 균을 제거하기 위해 살균과정을 거칠 뿐 아니라 보관과정에 지방이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지방을 아주 잘게 부수는 균질화과정을 거친다.
살균하기 위해서는 우유를 끓이는 게 좋은데 그럴 경우 모든 영양소가 파괴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살균방법이 바로 저온살균법이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는 1864년 와인을 비등점보다 훨씬 낮은 섭씨 60~70도로 가열해 몇 분 유지하다가 빠르게 식히면 절대 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것이 최초로 개발된 저온살균공인데, 그 후로 이 공법이 우유에 적용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과학자들은 우유를 비등점 바로 아래에서 20분 동안 가열한 후 빠르게 식혔더니 우유가 상하지도 않고 질병을 옮기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 공정은 좋은 세균까지도 죽였기 때문에 치즈를 만드는 사람들은 저온살균우유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이들이 저온살균우유를 죽은 우유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끓이면 모든 영양소가 파괴되지만 비등점보다 낮게 살균하면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살균우유가 맛이 없다거나, 저온살균기계가 너무 비싸다거나, 영양소가 파괴된다는 이유로 저온살균우유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저자는 이의 대안으로 1891년 하버드의대에서 우유 품질인증 절차를 개발했다고 설명한다. 마침내 1910년 뉴욕시 보건국에서 우유 저온살균을 의무화했고, 1911년 미국 우유기준위원회가 우유 품질인증 절차(milk standard)와 저온살균 우유를 모두 인정하면서 우유는 품질인증을 받거나 저온살균 해야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미국 의학협회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저온살균법이 개발되면서 우유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했지만 좋은 치즈를 만드는 데는 저온살균 우유보다 생우유가 낫다는 것은 치즈 생산자나 소비자가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품질이 보증된 생우유는 모든 면에서 저온살균 우유보다 우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저온살균법이 개발되고 나서 생우유 생산을 금지했지만 생우유의 품질인증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생우유 생산이 부분적으로 합법화 되었다. 하지만 일반 상점에서 생우유를 판매할 경우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어 생우유 생산 유통 비용이 증가해 가격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우유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당초 우유를 짜고 치즈를 만드는 것은 여성의 일이었다. 치즈 생산이 기계화 되면서 여성이 기계조작에 익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거대한 치즈 덩어리를 나르는 것이 여성에게 힘겨워지면서 치즈 생산은 점차 남성 중심의 산업으로 바뀌었다. 또한 기계착유가 가능해지면서 낙농이 산업화 되었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젖소 40마리 정도 키우면 큰 낙농가였지만 산업화된 20세기 들어서면서 1천 마리 정도 키워야 큰 낙농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저자는 미국 정부 통계를 인용해 1944년 미국의 낙농가에서 키우던 젖소가 2,560만 마리에 이르렀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고작 9만 마리로 이보다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한다고 설명한다. 다른 통계에 의하면 1942년 당시에는 젖소 한 마리가 평생 우유 2,265킬로그램을 생산했지만, 오늘날에는 고단백 사료와 인공수정 덕분에 9,513킬로그램으로 늘었다.
뭔가 이상하다. 지금 9만 마리 젖소가 생산하는 우유의 총량이 1940년대에 2,560만 마리가 생산하는 우유보다 많았다면 젖소 한 마리가 생산하는 우유의 양이 28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젖소 한 마리가 평생 생산하는 우유의 양은 2,265킬로그램에서 9,513킬로그램으로 4배 정도 증가했다. 두 가지 통계에서 제시하고 있는 증가폭이 무려 70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몇 번이나 찾아보았지만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확인할 수 없었다.
낙농시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축 분뇨로 인한 악취와 가스 때문에 혐오시설로 취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가축분뇨 배출량이 미국 하수처리장 전체용량의 100배가 넘고 450만 명이 가축분뇨 때문에 질산염으로 오염된 식수에 노출되어 있다. 낙농시설에서 배출되는 악취에는 호흡기와 소화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화학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가축이 방구로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파괴력이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20배에 이른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처리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우유 가격도 당연히 인상될 수밖에 없어 낙농산업의 전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요즘은 동물복지나 동물학대 주장이 낙농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낙농업계에서는 1993년을 기점으로 몬산토에서 유전자 변형 방식으로 제조한 성장호르몬을 젖소에 투여하여 생산량을 25퍼센트나 증가시켰다. 많은 사람이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저자는 아직까지 위험이 존재한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면서 항생제 투여량이 함께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사료에 값싼 고기나 뼛가루를 섞어서 주고 있는데 그 결과 광우병이 발생한 것이다. 사람의 욕심 때문에 사람에게 치명적인 병이 생겼다. 또한 유전자 변형(GMO) 곡물을 사료로 쓰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유의 역사를 통해 우유 산업이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궁금해 읽기 시작했다. 5백 쪽에 가까운 적지 않은 분량인데 정작 알고 싶었던 것은 위에 요약해놓은 정도이고 뜻밖에 우유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음식에 대한 레시피가 상당한 분량으로 실려 있다.
읽으면서 우유에 대해 미처 모르고 있었던 사실 몇 가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우유는 당초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요거트나 치즈와 같은 영양가 높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생산했으며,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생기기 오래 전부터 우유는 피가 하얗게 변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초기 교회에서는 영성체 때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음료로 포도주가 아닌 우유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