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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30. 2023

스마트 브레비티

짐 밴더하이

윤신영, 김수지 번역

생각의 힘

2023년 4월 28일


나는 글을 짧게 쓴다. 이 말을 들으면 내 글을 읽는 이들은 모두 웃을 것이다. 내가 쓰는 글 대부분이 길어도 보통 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도 예외는 아니다.


글은 짧아야 한다. 길어지면 쓸데없는 게 들어갈 뿐 아니라 문장을 견고하게 끌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짧은 글이 비문인 것을 보았는가? 더 중요한 것은 글은 읽으라고 쓰는 것인데 긴 글은 아무도 읽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콘텐츠 하나 읽는데 26초, 클릭한 웹 페이지 읽는데 15초를 사용하고, 클릭한 웹페이지를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데 0.017초 걸린다고 말한다. 길어 보이면 읽지 않고 넘어간다는 말이다. 독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글이라면 이 수치는 결정적이다.


저자는 이와 같이 선택을 기다리는 글은 물론이고 반드시 읽어야 하는 업무용 메일이나 서류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나 역시 메일을 받아놓고 읽지 않거나 메일에 다 적혀있는 것을 놓쳐서 낭패를 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독자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것이 단순이 길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짧을 뿐 아니라 한 눈에 내용을 알아보도록 써야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저자는 그런 글쓰기를 통해서 기업을 일으키고 매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거부가 된 사람이다.


저자는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글쓰기를 <스마트 브레비티>라고 이름 붙이고 그 사례를 자기가 주장하는 <스마트 브레비티> 방식으로 하나씩 설명해 간다. 책의 내용이 그다지 많지도 않고 큰 글자로 눈에 잘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나는 전자책으로 읽었고 종이 책은 이와 다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스마트 브레비티> 방식 글쓰기를 위해 유의해야 할 일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제목은 여섯 단어 이내로 하라. 짧은 단어가 강력하다. 그래서 3음절보다는 2음절, 2음절보다는 단음절로 된 단어를 사용하라. 고상하거나 전문적이거나 잘 쓰이지 않는 단어보다는 일상적인 단어를 사용하라. 능동태로 써라. 첫 문장에서 제목을 반복하지 말라.”


저자가 성공으로 이끈 기업인 ‘악시오스의 비밀 대공개’라는 광고문구와는 달리 내 눈에는 이 책이 표현이 새로울 뿐 그동안 읽어왔던 수많은 동종의 책에서 대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나마는 실제로 저자가 주장하는 방식으로 책을 편집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차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북 콘서트를 열었는데 참석자가 대부분 이삼십 대 여성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소셜미디어를 스마트 브레비티 하라>는 항목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것이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니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의 효과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동안 동종의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모티콘이 그 중의 하나이다. 워낙 옛날 사람이어서 그렇겠지만 나는 공적인 글쓰기에서 이모티콘 사용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이모티콘이라기 보다는 픽토그램에 가까워 보였다. 올림픽에서 각종 경기를 단순화시킨 비언어적인 표식이 바로 픽토그램인데, 의미나 모양으로 보면 그 두 가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동안 문단을 구분할 때 사용하던 표시도 이와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괜한 선입견이 작용한 것이었을까?


이 책이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래 전에 아주 인상 깊게 읽었던 <The One Page Proposal>이 떠올랐다. 패트릭 라일리가 쓴 127쪽에 불과한 이 책은 2002년에 발간되었다. 벌써 20년도 넘었지만 지금도 내 글쓰기 요령은 그 책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스마트 브레비티>의 골격은 대체로 다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The One Page Proposal>은 제목 그대로 모든 서류는 One Page를 넘기지 말라는 책이다. 사실 복잡한 서류를 한 장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 서류를 장악하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품이 더 든다. 처음에는 익숙해지지 않아 서류는 서류대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한 장으로 요약하기까지 했다.


기업에는 “권한이 있는 사람은 일을 모르고, 일을 아는 사람은 권한이 없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일도 모르고 시간도 없는 최종 결재자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 늘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The One Page Proposal> 방식을 적용하기 전에도 결재서류 앞에는 늘 요약본을 붙여야 했다. 그러다가 이 방식에 따라 아예 처음부터 서류를 한 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곧 익숙해졌다. 이 방식의 효과는 단지 서류를 단순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까지 확장되었다. 일을 하고 그 결과로 서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서류 만드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서류나 설명이 짧아야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서류나 설명은 내 생각을 남에게 전하는 도구이다. 상대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알아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시간을 마냥 주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서 상대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기술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공적으로도 그렇고 사적으로도 다르지 않다.


내가 근무한 회사에서는 꽤 오랫동안 조회시간에 3분 스피치를 이어 왔다. 발표하는 사람도 발표한 것을 평가하는 사람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그것이 ‘을’일 수밖에 없는 회사원에게 매우 유용한 교육기회라고 생각했다. 평가기준에 시간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넘어도 안 되고 남아도 지적의 대상이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하는 것만큼이나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 책 후반에서는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슬라이드를 단순화하고, 텍스트를 최소화하고, 글꼴과 스타일은 한 가지만 쓰고, 단어와 이미지도 최소화 하고, 전체 열 장을 넘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실 프레젠테이션이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설명할 요점을 그림과 함께 단순하게 적어놓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화려해지기 시작했는데, 갖은 모양의 폰트와 서식과 그림으로 범벅이 되어갔다. 많은 내용을 집어넣으려니 텍스트가 점점 많아졌고 급기야는 텍스트가 너무 많아져서 글자가 읽을 수 없을 만큼 작아지기까지 했다. 사실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시간은 십오 분을 넘기기 어렵다. 그 정도 시간이라면 슬라이드가 다섯 장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 텍스트는 설명을 들으며 따라갈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요즘 슬라이드 한 장이 서류 한 장보다 더 복잡하다.


저자가 인용한 대로 말로만 설명을 들었을 때 내용 중 기억할 수 있는 것이 10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이미지가 되었을 때는 큰 폭으로 늘어난다. 프레젠테이션은 아직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저자가 제시한 요령은 별다른 것이 없다. 하지만 기초는 늘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프레젠테이션 역시 기초를 벗어나면 성공하지 못한다.


<스마트 브레비티>나 <The One Page Proposal>이나 강조점은 다르지 않다. 내용이 복잡한 것도 아니다. 늘 듣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 적은 단어로 더 많은 내용을 담는다는 게 어디 그렇게 말처럼 쉽겠는가.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이런 책이 나왔겠으며, 그런 일을 대행해주는 컨설팅 업체가 왜 생겨났겠는가. 원리를 깨닫고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강조한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마음에 새겨둘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값은 충분히 돌려받은 것이다.


“약 80퍼센트의 사람들은 (1600단어 칼럼의) 첫 페이지에서 읽기를 멈춘다. 이는 독자들이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내용 중에 기껏해야 490단어를 소비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단어들이 정치와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있는 이야기의 전부였다.”


“강력한 글은 간결하다. 문장에 불필요한 단어가 있어서는 안 되고, 단락에도 불필요한 문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기계에 불필요한 부품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글을 읽거나 정보 하나를 얻는데 평균 26초만 사용한다. 26초 안에 읽을 수 없는 글은 낭비다.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는 건 수십 단어 정도이고, 나머지는 잘해 봐야 훑어볼 뿐이다.”


이 리뷰의 서두에서 나는 글을 짧게 쓴다고 했다. 물론 거기에 이 리뷰는 해당하지 않는다. 내가 짧게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보고서라던가, 서류라던가, 메일 같은. 혹은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대하고 쓰는 글이 그렇다. 그렇다면 길게 쓰는 글은 뭔가? 누군가 읽기를 기대하고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내 글에 반응하는 이가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써놓은 리뷰는 다른 글에 비해 반응이 훨씬 덜하다. 책 한 권 읽고 리뷰를 쓰자면 짧아도 이틀은 걸린다. 가볍게 쓴 글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반응하는데 그런 글에 반응하는 이는 열 손가락을 넘기기도 어렵다. 나는 그 반응조차 읽었다는 표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그런 긴 글을 쓰는 것은 읽은 것을 잘 정리해서 기억하기 위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혹시나 그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방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요즘은 그것으로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덤을 누리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제대로 읽는다면 지식도 얻고, 치매도 예방하고, 일상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 시도해 보시라. 물론 책임은 못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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