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Jun 12. 2023

인류의 여정

불평등의 원인

오데드 갤로어

장경덕 번역

시공사

2023년 3월 10일


무려 보름이나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지난 수 년 간 책 한 권을 이렇게 오래 읽었던 적이 없다. 그 사이에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시차 때문에 비몽사몽하며 지낸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던 것은 이 책이 매우 많은 주제를 매우 깊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숫자와 도표도 많이 실렸다. 그렇다고 다른 책보다 부피가 유난히 더 큰 것도 아니다.


하루는 책 읽는 게 너무 더뎌서 책을 읽다가 말고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기까지 했다. 많은 주제를 깊게 다루고 있다는 것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여러 주제를 다룬다고 해도 대체로 그 주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주제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맨 마지막 장에 가서야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구절을 찾았다.


“불평등의 뿌리에서 표층에 있는 것은 세계화와 식민지화가 낳은 비대칭적인 효과다.”


저자는 불평등의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그 많은 주제를 훑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 ‘부의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라는 부제가 붙었다. 그렇기는 해도 저자의 집필 목적을 드러내기엔 각 항목의 연결고리가 너무 약했다. 각 주제의 상호작용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저 쭉 늘어놓기만 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책 읽는 게 그렇게 더딘 것이 꼭 주제가 너무 넓고 깊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을 읽고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몇 번 곱씹고 나서야 “불평등의 표면적인 이유가 세계화와 식민지화이다”라는 말인 줄 알아들었다. 이것이 저자가 글을 어렵게 썼기 때문인지 역자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았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처럼 문장이 난삽한 것도 읽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던 이유였지 싶다.


이 책은 인문서적이라기보다는 불평등 연구에 대한 개론서라고 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관련 강의의 교과로 쓰임직도 하다. 내가 보름 가까이 끙끙대며 붙들고 있어야 할 책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 걸 알면서도 도중에 던져버리지 못하는 게 또한 내 우유부단한 성정이다.


몇 가지 기억할 만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흑사병은 인류사상 가장 파괴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이는 14세기 중국에서 발생해 몽골군과 상인이 비단길을 따라 크림반도로 이동할 때 옮겨져 대유행으로 번진 것이다. 1347-1352년 5년 동안 유럽 인구의 40%가 사망했다. 파리, 피렌체, 런던, 함부르크를 포함한 여러 도시에서 주민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끔찍한 참화가 지나자 노동에 대한 수요가 치솟았고, 그 결과 임금이 높아지고 노동조건이 나아졌다. 잉글랜드의 경우 1345-1500년 사이에 인구가 540만에서 250만으로 격감하면서 실질임금이 2배 이상이 되었다. 임금 상승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되자 출산율이 높아지고 사망률은 낮아졌다. 그렇게 인구가 회복되었지만 그로 인해 평균임금이 하락해 불과 3세기 만에 인구와 임금 모두 흑사병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탄소배출은 인구가 늘어나면 늘어나지만 소득이 증가해도 늘어난다. 그런데 소득이 늘어나는 것보다 인구가 늘어나는 게 훨씬 더 크게 늘어난다. 그러니까 인구 5천 만 명에 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인 국가의 탄소배출량이 인구 1천 만 명에 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인 국가보다 훨씬 많다. 산업혁명이 지금의 온난화를 촉발했지만 그와 동시에 시작된 인구 변천 때문에 그 충격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위의 사례는 모두 중국의 ‘새옹지마’ 고사나 유대인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경구를 생각나게 한다. 영원한 발전도 없고 영원한 퇴보도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현대국가에서 지향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은 한 번 외부에서 동력을 전달 받으면 더 이상의 에너지 공급 없이 스스로 영원히 작동하는 영구기관(Perpetual Motion Machine) 만큼이나 허황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인구와 관계된 저자의 언급도 눈길을 끌었다.


“산업혁명 초기 단계에서 급속히 늘어나던 인구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출산율과 인구증가율이 가파르게 낮아졌다. 산업혁명으로 소득이 늘어났지만 인구 증가율이 낮아지면서 생활수준이 장기적으로 향상되었다. 인구 증가율이 줄어드니 여성 고용이 늘고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들었다.”


“추가적인 환경파괴를 막고 붕과 가능성을 낮추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금의 곤경에 이르게 한 핵심 요인에 집중해야 한다. 바로 환경친화적 기술혁신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고 인구가 환경에 지우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출산율을 낮춰야 한다.”


사우디 현지법인에 부임하기 전 몇 년 동안 인구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십오 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당시 엔지니어가 하라는 설계는 않고 인구문제를 파고드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인구문제가 더 이상 인구 전문가나 정책 입안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때도 이미 늦었지만 그때만이라고 인구문제에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전대미문의 위기를 앞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인구문제가 몰고 올 위기가 어떤 모습일지 유추해 내 자리에서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몇 가지 대안을 냈고 공감도 얻었으나 그것을 실행으로 연결시킬 추진력이 내게 없었다. 돌아보니 그때 그것을 실행했더라도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성 싶기는 하다.


아무튼 인구문제에 대해 남보다 한 발 먼저 한 자 더 깊이 생각한 내 관점에서 볼 때 출산율을 낮춰 성차별을 해소하고 인구가 지구환경에 지우는 부담을 줄이자는 저자의 주장은 생소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아직도 세계 인구는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을 비롯한 인구감소국가들의 문제를 가벼이 여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 책은 존경하는 젊은 학자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전자책으로 선물을 받았는데, 전자책을 선물할 수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 돈으로 순댓국이라도 사줬으면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받았을 것인데. 덕분에 보름동안 고생하고 겨우 찻종지만큼 끈기를 키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마트 브레비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